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참 행복을 살아가면서 성인이 됩시다”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에 “역행하여” (예수님께로 이끄는) 올바른 길(la strada maestra)인 참 행복 (le Beatitudini)을 살아감으로써 성인(santo, 聖人)이 된다.

성인이 (되는 것은) 항상 보편적인 부르심이며,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교회가 가르쳤기에, 모두는 성인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는다. “이웃 같은” 수많은 성인들이 이를 입증해준다. 게다가 성덕의 삶은 “하늘나라의 열쇠”인 자비의 삶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러므로 성인이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며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성인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과거의 이단들의 “반추”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공격적이고 “가속화된” 세상에서 “유머 감각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논문”이 아니라 초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 권고의 서두에 두려고 선택했던 건 바로 기쁨의 정신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Gaudete et exsultate, Rallegratevi ed esultate)”는 제목은 예수님께서 “당신 때문에 박해 받고 모욕당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되풀이하는 것이다(마태 5,11-12 참조). 이 문헌의 다섯 장(章)과 44쪽에 이르는 내용에서, 교황은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자신의 가르침의 노선을 따른다. 곧,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몸”과 가까운 교회다. 117개의 항은 “(성인에 관한) 수많은 정의와 구별에 대한 논문”이 아니라, “(성덕의) 위험, 도전, 기회”를 명시하면서, “한 번 더 성덕으로의 부르심을 상기시키” 위한 방식이라고 바로 예고했다(2항).

성덕의 보편성

교황은 성인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설명하기에 앞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제1장에 잠시 머물러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확언했다. 각 개인을 위한 완덕의 길이 있다. “도달할 수 없어 보이는 성덕의 모델”을 관상하거나 혹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본받으려고” 애쓰면서 낙심하는 건 의미가 없다(11항). 따라서 교황은 “이미 하느님 면전에 있는 성인들이” 우리를 “격려해주고 동반해준다”(4항)고 강조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성장하도록 부르시는 성덕은 일상적인 “작은 행동들”의 성덕이며(16항), 많은 경우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증언하는, “성덕의 보편성(classe media della santità)”(7항)이라고 덧붙인다.

신과 같은 이성

교황은 제2장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에서 다뤘던 성찰의 대상이자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과 최근 신앙교리성의 문헌인 「하느님 마음에 드시는」(Placuit Deo)에서도 정의 내린 “성덕에 대한 미묘한 두 원수”를 비난한다. 그 원수들이란 바로 고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기인한 “근심스러운 현실성”(35 항)을 떠받치는 “영지주의(gnosticismo)”와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esimo)”다. 교황은 영지주의가 “하느님도 없고 육체도 없는 지성”의 자아도취(autocelebrazione)라는 데 집중한다. 교황에게 있어 영지주의란 “하느님의 신비와 그분의 은총의 신비를 길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차가운 논리”이자 “피상적인 허영”이다. 이어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결국에는 “그리스도 없는 하느님, 교회 없는 그리스도, 하느님 백성 없는 교회”를 선호하기에 이른다(37-39항).

의지의 숭배자들

프란치스코 교황에 따르면, 신 펠라지우스주의는 영지주의에서 파생된 또 다른 오류다. 여기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 아니라 “정해진 규범”을 지키거나 혹은 “특정한 가톨릭 양식에” 충실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겸손 없는 의지”와 “개인적인 노력”이다(49항). 교황에 따르면, “율법에 대한 집착”이나 “전례에 대한 관심, 교회의 가르침과 명성에 대한 과시”는 다른 것들 가운데서도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이 이단이 꾀하는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특징들이다(57항). 반면에 교황은 하느님의 은총이 항상 “인간의 의지와 지적 능력”을 초월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54항). 때때로 “우리는 복음을 복잡한 논리 체계로 만드는 노예가 되는” 것을 확인한다(59항).

성덕의 여덟 가지 길

“성덕이 무엇인지에 관한 모든 이론들” 위에는 참 행복(le Beatitudini)이 있다. 교황은 이를 제3장의 중심으로 다루면서, 이 산상설교를 통해 예수님께서 “성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셨다”고 힘주어 말한다(63항). 교황은 참 행복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훑어 나간다. 먼저 단순한 삶을 의미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서부터(70항), “어디에서든 논쟁하는”, 세상 안에서 “겸손한 온유함으로 대응하는 사람”(74항)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또한 “세상이 무시하고 고개를 돌릴 때”(제75-76항), 다른 이들의 고통에 “아파하는” “연민(compassione)”을 지니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용기”에서부터, “부패 집단”이 “생명의 케이크”를 나눠 가질 때(제78-79항), “의로움에 주리고 목말라하며 정의를 추구하기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아울러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 “용서하다”(81-82항)를 의미하는, “자비를 가지고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에서부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더럽히는 모든 것에서 깨끗한 마음을 지키는 것”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86항).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평정심, 창의성, 감수성, 능숙함”을 지니고 “사회적 우정”과 “평화를 씨 뿌리는 것”에서부터(88-89항), 오늘날 참 행복에 대한 언행일치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의심을 받으며, 놀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살기 위해 우리 주변의 모두가 호의적이기를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박해를 받아들이는 것까지를 다룬다(91항).

위대한 행동 규칙

교황은 참 행복 가운데 하나인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마태 5,7)이 “최후 심판”에 대해 마태오 복음 사가가 25장에서 묘사했던,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한 행동 규칙”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이 부분의 내용은 “성인이 된다는 것이 (...) 거짓된 황홀경에 빠져 눈이 빛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96항), 작은 이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사는 것임을 증명해준다고 교황은 재차 강조했다. 교황은 또 불행하게도 “복음을 훼손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데 주목했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를 일종의 비정부기구(NGO)로 변형시키는”(100항), 하느님과 아무런 관계 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상적이고, 세속화되고, “공산주의자나 인민주의자”로 치부하면서, 혹은 윤리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상대화”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의 사회적 헌신을 불신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서 교황은 모든 인간 범주를 통해 연약한 자들 혹은 무방비한 사람들에 대해 “보호가 반드시 확고하고 보호에 집중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제101항). 교황은 비록 일부 가톨릭 신자들이 생명윤리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하더라도, 모든 이방인들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에, 이민자들의 환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고, “교황이 만들어낸 것이라거나 일시적인 망상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제103항).

성덕의 특징

교황은 “쾌락적 소비주의”를 하도록 부추기는 것처럼 “삶을 즐긴다”는 것이 자비의 활동에 “헌신할 것”을 요청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열망과는 반대되는 것임을 강조했다(107-108항). 이어 제4장에서 성덕의 삶의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특징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곧, “참을성, 인내와 온유”, “기쁨과 유머 감각”, “대담함과 열정”,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관상”에 도달하는 “공동체성”, 그리고 “지속적인 기도 안에서” 살아가는 여정이 그것이다(110-152항).

지성적이고 깨어있는 투쟁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를 현혹시키고 평범하게 만드는”(159항) “세상의 사고방식”을 거스르는 “끊임없는” 투쟁이다. 따라서 교황은 제5장에서 “신화”가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는 인격적인 존재”인 “악마”에 반하는 “싸움”으로 우리를 초대하면서 결론을 내린다(160-161항). 교황은 악마의 계략이 기도와 성사의 “강력한 무기”를 활용하면서, 사랑의 행위로 짜인 삶을 통해, “깨어있음”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말했다(162항). 아울러 교황은 중요한 것은 “식별”이라고 강조하면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텅 빈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 여행에서부터 자유시간을 비롯해 기술의 무절제한 사용에 이르기까지, “활동과 즐거움의 엄청난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시대에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29항). 또한 교황은 종종 현실과는 동떨어진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재핑(zapping: 광고를 피하기 위해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는 행위)하는 행위에 노출된” 젊은이들을 위한 특별 치료를 요청했다(167항). “이러한 삶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식별할 것이 아니라, 세례성사 때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어떻게 우리가 더 잘 완수할 수 있는지 깨닫기 위해 식별해야 합니다”(17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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