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23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시성식 3주년


죠바뇰리,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서 현실화 된 론칼리와 보이티와

2017년 4월 27일은 지난 마지막 세기 동안 교회의 삶에 깊이 영향을 미친 두 교황, 성 요한 23세 교황(론칼리)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보이티와)의 시성식 3주년이었다. 가톨릭 역사가 아고스티노 죠바뇰리(이하 죠)는 알레싼드로 지소띠(이하 지)와의 인터뷰에서 성 요한 23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서 드러나는 ‘평화’라는 주제부터 시작해 다양한 국면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수행에서 뚜렷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죠: 두 교황이 살았던 역사적인 시기는 달랐지만 ‘평화’라는 주제는 성 요한 23세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분명히 핵심적인 주제였습니다. 제3차 세계대전은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이 분명하기에 전쟁에 반대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온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가톨릭 공동체인 이 커다란 신앙인 공동체의 지도자인 교황들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 안에서 평화의 메시지의 전달자가 될 필요성을 열심히 알리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냉전에서 소련 이후의 상태로, 그리고 현재 세계의 커다란 혼란의 상황까지 지나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세상 안에서 가톨릭 교회가 수행하는 새로운 역할의 표시입니다.

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잊지 않았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분명히 바오로 6세와 함께 공의회의 교황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무 수행에서 성 요한 23세 교황의 교도권과 예언자적 영감을 지닌 모습이 특히 두드러진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죠: 프란치스코 교황의 직무수행은 확실히 성 요한 23세 당시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무엇보다 매우 직접적으로 인간적인 소통을 추진하고, 교황조차도 제도적 논리 속에 가둬버릴 수 있는 “규칙들”을 계속 파괴하는 방식에서 그렇습니다. 이 방식은 분명하게 사목적인 방식이면서도 세상과 만나는 교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빌리자면, 밖으로 나가는 교회의 방식입니다.  

지: 밖으로 나가는 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여행을 통해 전 세계 모든 이들과 만남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또한 신상에 대한 자료도 있습니다. 곧,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베르골료(현 프란치스코 교황)를 주교로 임명했고, 그 후 추기경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카롤 보이티와(성 요한 바오로 2세)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죠: 그렇습니다. 사실 두 분은 매우 다르지만, 분명 두 교황님 사이에 이중의 연결이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교회의 의미가 서로 다른 두 분 안에 현존한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전 세계로 많이 여행을 다니셨기 때문에 그분을 첫 번째 국제적 교황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국제화의 교황입니다. 물론 조금 다른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국제화된 세상에서 살고, 국제화된 세상과 대화할 줄 알며, 특히 오늘날 국제화의 모순을 쏟아내는 대도시의 사목을 할 줄 안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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