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 오늘부터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사목방문 시작


교황 프란치스코, 오늘부터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사목 방문 시작

조지아 공화국은 흑해와 카스피해를 동서로 가르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카프카즈 산맥에 위치한 국가로 1991년부터 유럽 공동체의 일원이 된 나라다. 조지아는 그 지정학적 이유로 그리스, 비잔틴, 페르시아, 아랍, 몽고, 오스만 제국, 러시아 등 끊임없는 외세 침입이 있어 왔던 나라다. 러시아의 요셉 스탈린은 1879년 조지아의 고리에서 태어나 현재 수도인 트빌리시에 있는 신학교에서 5년간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며 오늘 교황 프란치스코의 조지아 방문은 바로 이 트빌리시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조지아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세기 경으로 특별히 안드레아 사도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 후에 여러 명의 선교사들이 조지아에 복음을 전하러 왔으며 가나안의 시몬, 성 마티아도 파견되었고 기원후 330년에 그리스도교는 조지아의 국교가 된다.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자리잡게 되는 것은 그 왕인 니노 성녀의 공이 크다. 교회 저술가 루피노는 니노 성녀가 세례를 받게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조지아는 이렇게 그리스도교 국가로 선포된다.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도 조지아의 서쪽에 위치한 피춘다의 주교가 공의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성녀 니노는 카헤티에 있는 보바에 묻혔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대성당과 수도원이 세워졌다.

조지아의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점은 수도생활의 발전이다. 초기 수도원들 가운데 하나인 네크레시에 있는 수도원(카헤티주의 텔라비에 있는 수도원)은 기원후 4세기 경에 세워졌다. 그리고 복음이 처음 조지아 언어로 번역된 것은 기원후 5세기 중엽이고 성경 전체가 처음으로 번역된 것은 6세기 경이다.

조지아에서 가톨릭교회의 현존은 크게 세 가지 전례적 구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구 소련의 공산주의 통치가 종식되고 나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3년 조지아에 라틴 전례를 따르는 카프카즈 직할 서리구(Administratio Apostolica)를 교황 대사관과 함께 설정했다. 직할 서리구는 특수하고 매우 중대한 이유 때문에 교황에 의하여 아직 교구로 설립되지 아니하고 교구장 서리에게 사목이 위탁된 하느님 백성의 한 부분이다. 교구장 서리는 직할 서리구를 교황의 이름으로 통치한다. 카프카즈의 라틴 직할 서리구에는 1999년 예전에 파괴되었던 주교좌성당이 재건되었고 이곳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방문했었다. 조지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종교는 조지아 정교회이며 그 숫자는 약 90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다음은 무슬림들이 9.9%, 아르메니 3.9%, 가톨릭 2.5%, 러시아 정교 2%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교회 일치와 종교간 대화 문제는 중요한 현안이고 역사적 상황등에 의하여 다수를 차지하는 정교회는 교회 일치 운동과, 가톨릭 세례성사를 비롯하여 나머지 성사들에 관한 문제, 혼종혼의 문제들에 대해서 매우 엄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교회의 애덕 활동,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협력, 가정, 생명 등에 주제에 대해서 함께 심포지움을 개최하는 등의 긍정적인 활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그 다음은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에 대한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1년 동유럽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조직을 설정했다. 일종의 속인주의적 성격의 교회구로서 엄밀하게 말하면 아르메니아 가톨릭 전례를 따르는 신자들을 위한 교회구라고 볼 수 있다. 조지아 지역에 아르메니아인들이 광범위하게 퍼져서 살고 있는 것은 1829년에서 30년까지 이어진 난민 이동 때문이었다. 이것은 러시아와 오스만의 전쟁이 끝나면서 그 협약에 따라 발생한 일들이다. 그 시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은 만 사천 가구 이상, 십만 명에 이르는 아르메니아인들이 고향을 떠나 흩어졌어야 했다.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약 4000명이 그 수도인 트빌리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5개 도시와 25개의 마을들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리고 시로-칼데아 가톨릭 공동체에 대한 교회구는 1995년 바빌론의 칼데아 총대주교와의 협의를 통해서 교황청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되었다. 시로-칼데아 가톨릭 공동체 신자들은 그들의 땅을 잃어버리고 나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란, 이라크, 터기, 시리아 등지에서 살고 있다. 조지아 지역에 있는 이 신자들은 약 7천 명 정도로 알려져 있고 소비에트 연방 시절 속에서도 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데 노력을 기울여 현재의 신앙을 보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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