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하느님의 자녀라는 존엄을 회복하십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31일 수요일에 진행된 일반 알현에서 마태 복음 9장 20-22절의 예수님께서 하혈하신 여인을 고쳐주신 이야기에 대하여 알현에 참석한 순례객들과 함께 묵상하며 가르침을 전했다. 

교황은 가르침에서 사회에서 버림받은 여인이 믿음과 용기로 예수님께 다가가 치유되고, 사회에서 받았던 소외와 박해에서 해방되며 하느님의 자녀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언급하며 자신의 죄에 매몰되어 숨지말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다가가 그분의 자녀라는 존엄을 회복할 것을 권고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 가르침 전문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들은 복음 말씀은 믿음과 용기가 탁월했던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께서 하혈병을 고쳐주셨던 여인의 이야기 입니다.(마태 9.20-22 참조) 군중 속을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 그분 뒤로 다가가 옷자락에 손을 댑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21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이 여인이 지닌 믿음은 얼마나 큽니까!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을 현명하게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과 희망으로 용기를 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구원받고자 하는 열망은 너무도 큰 것이었기에 모세의 율법이 정한 것을 뛰어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사실 이 불쌍한 여인은 오랜 기간 아픈 것만이 아니라 하혈로 인해 정결하지 못하다고 여겨졌습니다.(레위 15.19-30 참조) 그로 인해 예식과 부부생활 그리고 이웃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소외되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많은 의사들을 만나보았지만 자신의 가산만 탕진하고 효험도 없었으며 상태만 악화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마르코 5.26) 사회에서 버려진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버려졌다라고 하는 상황을 생각해야 어떤 기분이었을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은 물론 소외되고 오랜 시간 경멸받던 것에서 해방시켜 주시리라 느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느꼈습니다.

이 모습에서 여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여러차례 드러나고 대표되는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불가침의 존엄성 대신 편견이나 경멸적인 질투로 여성성을 바라보지 않도록 우리도 그리스도교 공동체들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복음에서의 진실을 회복하고 시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피하였던 이 여인의 믿음에 놀라워 하시고 그녀의 희망을 구원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여인에 대해 복음에서는 몇줄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새롭게 하고 모든 사람들의 존엄의 위대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모든 이들,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의 남자와 여자들에게 해방과 구원의 길을 열어줍니다.  

마테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겉옷을 여인이 만졌을 때 예수님께서 돌아보시고(22절)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이미 이야기 했듯이 사회에서 소외된 상태였기 때문에 여인은 예수님 뒤로 숨으려 하고 모습이 드러날까 겁도 먹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비난하는 눈길을 주시거나 ‘여기서 사라지거라. 너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문둥병 환자이니 가거라’하고 말씀하신 적도 없으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눈길에는 자비와 자애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고 그 여인과 직접 만나고자 찾으십니다. 여인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열망하고 있었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시는 경우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만남도 존엄합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구원의 정의가 세번 반복됩니다.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고 이르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21-22절) 딸아 용기를 내어라라고, 신뢰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표현은 그 사람과 버려진 모든 이들을 향한 모든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합니다. 우리는 수없이 저지른 자신의 죄로 인해 내면에서 버려진 느낌을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믿고, 다가 오너라. 나에게 너는 버려진 이가 아니다, 용기를 내어라, 딸아. 너는 나의 자식이다!’이것은 은총의 순간이며 용서의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교회의 삶으로 들어가 함께 하게되는 순간입니다. 자비의 순간입니다. 오늘날 큰 죄인이든 작은 죄인이든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는 소외된 이가 아니다. 내가 너를 용서하고 너를 품어준다.’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용기를 내어 그분께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여인처럼 용기를 내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여러 모습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여인의 건강이 돌아온 후에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차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더구나 여인은 두려움과 실망이 있었던 마음에 희망이 차오르게 됩니다. 그런 후 숨어있어야 했던 삶에서 해방되어 공동체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소외된 이들은 잠깐이든 아니면 그 시대의 문둥병자처럼 평생을 숨어 지냅니다. 죄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죄를 언제나 숨기려 합니다. 우리의 죄를 숨길 필요성을 느끼고 스스로를 부끄러워 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일어서서 자유롭도록 해 주십니다. ‘일어나 오너라. 일어서거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듯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수치스럽지 않게 서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은 완전하며 하느님 사랑으로 여인이 다시 살도록 해주십니다. 동시에 존엄을 온전히 되찾아 주십니다.  

요약한다면 여인이 만진 겉옷이 구원을 준 것이 아니라 믿음과 위안을 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녀를 치유하고 하느님과 자신의 민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구원을 주실 수 있는 축복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믿음은 그것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근본적인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충만한 자비로 교회가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도록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리하여 각자가 육과 영의 치유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존엄을 회복하도록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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