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예수님 자비를 받아들인 마음으로부터 자비를 실천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10일 수요 알현 가르침을 통해 예수님의 자비를 받아들인 마음에서 머물지 말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권고하였다.

루카복음 7장 11-17절의 말씀을 함께 들은 뒤 복음 내용에서 드러나는 심오한 예수님의 자비를 언급하였다. 예수님께서 자비를 보여주셨던 나인의 성문과 희년의 자비의 성문을 비교하며 외아들의 죽음을 맞이한 과부의 슬픔에 공감해 주셨듯 성문을 방문하는 각자의 삶에도 응답하여 ‘일어나라’라고 말씀해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전했다. 희년의 자비의 성문은 또한 하느님의 자비가 인간적인 기쁨과 고통이 함께 만나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자비를 받아들인 마음에서 실천으로의 길도 함께 행해져야 한다면서 즉석에서 용서와 자비를 받는 자비의 성문 입구와 자비의 실천을 위한 성문 출구를 대성당에 마련한 어느 주교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자비를 실천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 전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우리가 들은 루카 복음(7장 11-17절)의 젊은이를 살려내신 부분은 예수님의 기적이 진실로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야기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기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젊은이의 어머니에 대한 예수님의 자애로우심입니다. 자비는 남편을 잃었고 이제는 외동아들을 묘지로 데려가야 하는 한 여인에 대한 측은함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여인의 커다란 슬픔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젊은이를 다시 살려내신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복음사가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많은 세밀한 사항도 드러냅니다. 나인이라는 고을의 성문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던 예수님과 죽은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관을 따라 묘지로 항하고 있는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의 행렬과 함께 있던 외아들을 잃은 과부와 마주하게 됩니다. 두 무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따라 스쳐 지나갑니다. 바로 이곳에서 루카 성인께서는 예수님의 느낌을 정확히 전해 줍니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에 그에게, “울지 마라”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13-14절) 위대한 자애심이 예수님을 움직였습니다. 그분께서 어머니에 대한 커다란 측은함에 마음이 움직이셔서 죽음에 맞서기로 결정하시고, 관에 손을 대심으로서 행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이는 여러분으로 인한,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을 위해 맞서게 되십니다.

희년의 기간 동안 성문을, 자비의 성문을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나인의 성문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복음의 이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슬픔에 잠긴 여인을 예수님께서 보셨을 때 그 여인은 예수님의 마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각자는 기쁨과 고통, 삶의 목표와 실패, 의문과 두려움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삶을 주님의 자비 앞에 봉헌하고자 성문으로 향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다가오셔서 커다란 힘을 지닌 위로의 ‘울지 마라!’(13절)라는 말씀을 해주고 계심을 자비의 성문 앞에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자비의 성문은 고통과 인류와 하느님의 자애심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죽음을 맞이했던 젊은이처럼 문턱을 넘어섬으로서 하느님의 자비로의 순례를 실현시킵니다. 다함께 말해 봅시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14절)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일어나 있도록 창조되었기에 예수님의 자비는 치유라는 활동으로 우리의 치유로 실천됩니다. 핵심적인 말은 ‘일어나라’ 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듯 일어서십시오. ‘하지만 신부님, 우리는 자주 넘어집니다.’ ‘하면 된다. 일어서라’ 예수님께서 언제나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비의 성문을 지나며 우리 마음에 이 말씀을 느껴봅시다.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하신 힘있는 말씀은 우리를 일어서게 하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걸음을 옮겨 놓도록 해주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다시 생기있게 하시며, 희망을 주시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주시며, 고통과 죽음을 넘어서는 세상과 삶에 대한 비젼을 열어주십니다. 자비의 성문은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라는 끊임없이 샘솟는 보물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돌아보면 ‘죽은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15절)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 구절은 예수님의 자애로우심을 드러냅니다. ‘어머니에게 되돌려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손에서 일어나게 된 이로 인해서 그녀는 다시 한번 더 어머니가 됩니다. 다시 일어나게 된 아들에게 두 번째 삶을 준 이는 그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예수님의 힘 있는 말씀과 사랑의 실천으로 각각 은총의 신원을 받게 됩니다. 특히 자비의 희년 동안 어머니인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생명으로서 자녀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교회를 어머니로 만들어 주고 우리 각자가 자녀들이 되도록 해 주는 세례의 은총이라는 미덕입니다.  

다시 살아난 젊은이는 어머니에게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하고 말하였다.’(16절) 예수님께서는 단지 과부와 그 아들을 위해서만 또는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선의를 보이시는 구원 활동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도움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 은총을 모든 인간들에게 계속 내려주시면서, 당신 백성들과 만나십니다. 모든 교회들이 자비를 살아내길 바라며 희년을 지냅니다. 다시 말해, 로마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교회가 주님의 찬양이라는 하나의 노래로 일치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오늘날의 교회는 하느님께서 방문하시는 곳으로 인식됩니다. 그렇기에 자비의 성문에 다가간다는 것은 우리 각자가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의 문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이야말로 구원으로 이끌며 새로운 삶을 주시는 진정한 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들 안에 있는 자비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손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바라보시고 자비로 치유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하면 당신의 마음은 새로워 집니다. 하지만 손으로 가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이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새로운 마음으로, 치유된 마음으로 자신의 손길을 통해 자비의  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주고 치유해 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마음에서 시작해서 자비의 활동이라는 손길로 가는 것입니다.

자비가 마음에서 손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음에서 예수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며 모두를 용서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두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들어 올리셔서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당신 자비로 물들게 하셨습니다. 용서받은 마음과 예수님의 자비로, 자비의 활동이라는 손으로 향하는 진정한 길을 걷기 시작합시다. 어느 주교님께서 당신 교구의 자비의 성문에는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하셨는지 물어보자 죄의 용서를 받으며 예수님의 자비를 받게 되는 입구와 타인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도록, 우리가 자비의 실천자가 되도록 해주는 자비의 출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현명하신 주교님이신지요. 우리가 마음에서 손으로 가듯 자비의 성문으로 교회안에 들어가 예수님의 용서를 받게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가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일어서서 출구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출구입니다. 마음에서 손으로 향하는 자비의 길 입니다. 이 길을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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