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청년대회 참석을 위한 폴란드 크라쿠프 방문 삼일째를 맞아, 7월 29일 금요일 오전 나치 강제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기념관과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교황은 이곳을 방문하기 전 연설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대신 혼자 침묵의 기도를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저는 비극이 깃든 장소를 연설도 관중도 없이 꼭 필요한 소수의 인원들과 방문하고 싶습니다. 혼자 들어가 기도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제가 울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황은 기자들의 사진 찍는 소리를 뒤로하고 조용히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적혀있는 수용소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은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가 낯선 이였던 프란치세크 가요프니체크를 대신하여 75년전 죽음을 맞은 11번 막사를 방문하고 고통의 현장에서 기도를 드렸다.
교황은 또한 이젠 노인이 된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들과도 만났다. 일일이 포옹으로 인사를 하고 손을 마주 잡았다.
교황은 수용소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와 가스실로 보내던 기차의 선로를 바라보았다.
이어 유대교의 랍비가 히브리어로 시편 130장을 낭독한 후 교황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는 죽음의 벽 앞에서 큰 촛불을 헌정하였으며 방명록에 '주님 당신 백성에게 자비를 보이소서! 주님 엄청난 잔인함을 용서하소서!' 라고 스페인어로 기록한 뒤 서명하였다.
비르케나우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보호하였던 폴란드인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는 나치가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폴란드군의 병영을 개조하여 유대인, 로마인, 카톨릭 사제 및 수도자들, 소련군 포로, 정신질환 장애인, 동성애자, 집시 및 기타 자신들을 반대하는 정치범 수백만명을 강제로 수용하고 학살하였던 장소로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는 유대인으로 사망자의 숫자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박물관 개관 당시 약 백만명으로 기록하였다. 또한 이곳은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와 성녀 에디트 슈타인이 죽음을 맞이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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