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 '프란치스코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라고 논평하다.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 '프란치스코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라고 논평하다.

교황은 ‘인종 학살’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상처를 기억하면서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가 아르메니아 정부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행한 연설 중 원고에 없던 내용을 말한 것에 대하여 논평을 한 내용이다.

답변-매우 감명 깊은 순간이었다. 아르메니아 민족이 겪은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장소에 교황은 아무 말없이 기도하면서 있었다. 단지 기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방명록에 남긴 글은 아르메니아 민족이 당했던 비극에 동참하는 마음이 강하게 표현되었지만 그러한 비극을 통해서 평화가 펼쳐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그리고 인종 학살 중에 카스텔 간돌프에 받아들여졌던 고아들, 그 어린이들의 후손들과 교황과의 만남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쥠리의 미나씨안 대주교의 형제다. 이것은 아직도 생존해 있는 많은 사람들 곁에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질문-미사 중에 교황은 아르메니아 국민에게 어려움들에 묻혀버리지 말하고 권고했다. 그의 방문은 여러 번 수난을 겪었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일종의 용기를 부여하는 기회인 것인가?... 교황은 지진도 기억했는데….

답변- 물론이다. 미사는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 공동체에게는 정말 역사적 순간이었다. 또한 미사는 온 열정을 다해서 교황을 환영한 도시 쥠리에게도 역사적인 것이었다. 이 도시는 최근에도 지진으로 인한 참상을 겪었다. 십여 년 전에도 지진으로 이 도시에만 약 25만 명이 사망했다. 도시는 다시 정비되고 있다. 교황과 함께 하는 이 미사에는  올수 있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참여했고  사도적 교회의 신자들도 참여했었다. 이 미사는 역사상 처음으로 광장에서 거행된 첫 미사였다. 왜냐하면 사도적 교회의 신자들은 광장에서 미사 거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미사에는 중심이 되는 두 교회의 신자들이 참석했고 주례자로서 교황이 있었으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대표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축제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교황의 강론도 매우 강했다. 여러 주제들이 있었는데 영적 특징으로 구분되는 기억이란 주제는 교황이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영적 경험의 근본이다. 신앙에 대한 주제도 있었고 자비에 대한 주제도 있었다. 그리고 아르메니아 교회의 풍성한 영적 스승으로 성 그레고리오 나렉에 대한 것도 있었다. 정말로 미사는 다루어진 주제를 보아서도 매우 풍부했고 깊이 있게 진행되었다. 감동적인 순간은 또한 교황이 차를 타고 광장을 돌아올 때였다. 교황은 자신의 차에 카레킨 총대주교를 태워서 함께 했으며 신자들 사이를 함께 지나갔다. 단순한 행동이지만 이것은 매우 깊은 형제애와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는 인상 깊은 순간이었다.

질문-교황과 아르메니아 민족과의 관계에서 이 사목 방문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이 민족이 강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이틀에 걸친 여행을 통해서 표현된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답변-여기 가톨릭 신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쥠리에서 거행된 미사를 빼면 교황이 거대한 군중을 불러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오후에 예레반 광장에서 있을 교회 일치 만남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참여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증명되고 있듯이 다른 곳에서와 같이 교황 프란치스코는 의심할 여지없이 사람들과 소통하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들, 태도, 즉흥적이지만 단순한 행위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특별한 인상을 남깁니다. 정말로 카리스마적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것은 문화적으로도 거리가 있는 한국의 경우에도 있었습니다. 교황은 방문하는 곳에서 항상 그 국민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성공해 왔었습니다. 어제 예를 들어서 교황이 ‘인종 학살’이란 표현을 사용한 사실은 지난 세기에 아르메니아 민족이 겪었던 희생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교황은 이런 행동들을 통해서 깊은 친교의 관계를 형성시킵니다. 이런 것은 어제와 오늘 사이에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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