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억과 믿음과 자비로운 사랑으로 지속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5일 아르메니아의 규므리에서 미사를 집전하였다. 아르메니아 정교회 총대주교 카레킨 2세와 함께 봉헌한 미사강론을 통해 1988년 지진으로 수만명이 사망하였던 규므리의 지진피해가 복구되었음을 먼저 언급한 뒤,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시키는 힘은 기억과 신앙과 자비로운 사랑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미사를 마치며 카레킨 2세와 관련자들 뿐만 아니라 규므리 지역 뿐만 아니라 죠지아에서까지 온 미사 참례자들에게 사랑과 너그러움을 보여주었음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한20년 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개원하여 교황의 병원으로 알려져있는 아쇼트스크 병원이 고통받는 이들과 계속 함께 하기를 바라며, 아르메니아의 성모영보 수녀원과 마더 테레사의 사랑의 선교회의 지역 카톨릭 공동체 활동도 상기하였다.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께서 평화와 우애를 위한 걸음을 인도하고 동행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전문

‘그들은 옛 폐허들을 복구하고... 폐허가 된 도시들을 새로 세우리라’(이사야 61.4) 형제 자매 여러분, 이곳에서는 우리가 들었던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지진 뒤에도 우리는 여기에서 재건한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주님께서 세우라고 하신 것일까요? 무엇보다 우리 삶에서 어떤 토대로 세우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저는 이에 대한 답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세 가지의 안정된 기초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기억입니다. 우리가 청해야 할 은총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기억의 재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언급되었듯 그분께서는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억’하셨습니다.(루카 1.72)  우리를 택하셔서, 사랑하시고, 불러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 개인적인 삶에서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서 다시 살려내야 할 그분 사랑의 중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장해 두어야 할 백성들의 기억도 있습니다.  사실 개인들처럼 대중적인 기억도 존재합니다. 여러분들의 기억은 오래된  것이며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과거의 지혜로웠던 성인들의 이야기를 다시 소리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언어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하여 창조된 말씀의 반향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노래는 여러분 역사의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어려움의 순간에도 오늘 복음에서 알려주듯 당신 백성을 찾아오십니다.(루카 1.68) 복음에서는 여러분들의 충실성과 신앙이라는 봉헌과 피를 흘리더라고 당신의 자애가 생명보다 낫다는 (시편 63.4) 증언을 멈추지 않았음을 기억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여러분의 숨결이 되고 마음의 기억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감사함으로 기억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신앙은 여러분들 미래의 희망이며 삶의 길을 밝히는 불빛입니다. 이것이 두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언제나 신앙의 빛을 어둡게 만들 위험이 존재합니다. 다른 시대에 일어났던 일을 과거에 있었던 것이나 중요했지만 예전의 사건이라고 여기고 싶은 유혹입니다. 신앙을 도서관에 잘 보관된 책처럼 여기게 만듭니다.  역사의 연대기 안에 가두어 버린다면 신앙은 변화시킬 수 있는 힘과 강렬한 아름다움과 긍정적인 모든 부분을 잃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삶의 모든 순간을 빛내주는 예수님의 자비를 경험으로 알게되는 그분과의 살아있는 만남을 통해 태어나고 또 새로워 집니다. 예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을 매일 접할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침묵의 기도 안에서 그분의 사랑에 들어가십시오. 기쁨으로 마음을 밝히는 주님의 자애와의 만남에 우리를 내어 놓아야 합니다. 슬픔보다 더욱 강력하고, 고통을 이기게 해주며 평화로 변화되는 기쁨입니다. 삶이 새롭게 됨으로서 자유로워지고  놀라움에 평온해집니다. 주님과 타인들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분과 형제들을 위해 삶을 내어놓기 위해 주님 곁에 더욱 가까이 불러주실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초대될 때, 특히 젊은이들이 불림을 받을 때 겁내지 마시고 ‘네’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를 아시고 진정으로 사랑하시며 두려움과 오만의 무게를 우리 마음에서 덜어내 자유롭게 만들어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분께서 들어오시도록 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전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여러분들은, 힘든 시기이지만 동시에 자비의 시기인 이때에 교회와 세상이 필요로 하는  복음화의 위대한 역사를 지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과 신앙 다음의 세번째는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예수님 사도들의 삶은 이 주춧돌에 기초합니다. 하느님께 받아서 이웃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주춧돌입니다. 자애의 실천으로 교회의 모습은 젊어지고 활발해 질 것입니다.  견고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명함입니다. 다른 명함은 거짓이며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분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13.35 참조) 우리는 지치지 말고 일치로 향하는 길과 서로를 갈라놓는 장애와 장벽을 넘어 하나가 되는 다리를 만들고 또 만들라는 부름 받았습니다. 믿는 이들은 언제나 상호 존중과 대화로서, ‘주님의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은 누가 더 큰 사랑을 내어 놓을 수 있는지를 찾는 것’ (요한 바오로 2세, 2001.09.27 강론)임을 알고, 모범이 되어 서로 도와야 합니다.

첫 번째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영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이들과 함께 하심을 상기시켜 줍니다.(이사 61.1-2 참조)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곳에 특히 자애와 권능으로 약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에 계십니다.  많은 이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피곤으로 그만두어서도 역경으로 의지를 상실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고 열려 있으며 봉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말로만 돕는 것이 아닌 실천을 하는 선한 의지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각자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노동으로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더욱 정의로운 사회가 필요합니다.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과 주변에서 보여지는 단점과 비극에도 어떻게 자비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성스러운 자비의 모습을 보여준 실질적인 예를 교회의 박사로 선포되신 아르메니아의 목소리요 말씀인 나렉의 그레고리오 성인에게서 찾고 싶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처럼 인간의 마음에 자리한 자비의 심연에 심취한 분은 안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눈물과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기도하시며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자비의 관계에 주목하셨습니다. ‘은총과 자연의 선함을 주시는 분,.., 위로의 목소리, 위안의 소식, 기쁨의 원천, ... 가없는 자비, 넘치는 자애, ...구원의 입맞춤’(통곡의 책 3.1)  확신으로 ‘자비의 빛은 분노의 어둠에도 꺼지지 않을 것’(같은 책 16.1)이라고 말한 나렉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삶의 스승이십니다. 우리에게 자비의 필요성을 인지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가 보는 고통과 상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주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으로 열라고 하십니다. ‘가까이 계시고 선한 자애의 하느님’(같은 책 17.2)이시며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시고... 죄를 태워 없애시는 분’(같은 책 16.2) 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레고리오 성인의 말씀을 빌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은총을 청하고자 합니다. 성령님은 ‘권능의 보호자이시며, 전구자이시고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전해주시고 ... 자애와 선한 일을 하기 위한 은총을 주십니다. 온화하시고, 열정적이시며 인간의 사랑과 자비의 영이십니다. ... 당신은 자비로우십니다. ... 당신의 위대한 자비로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성령강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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