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들은 교구와 수도회들 속에서 보물들이다.


시복절차 [9]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은 시복을 준비하고 시복식 거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의 교구와 봉헌 생활회에서 사목상 특별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열광적으로 시복식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복자들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일치된 관심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관상하며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복음적 생활을 한 사람들인 복자들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일치된 관심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복자들은 교구와 수도회들 속에서 보물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현존과 주님 앞에서 강력한 전구의 힘을 통해 영적으로 교구와 수도회들을 풍요롭게 한다.

더 나아가 신자들은 복자들이 자기들의 땅과 자신들의 문화 속에 속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들을 자기들의 가족이라고 느낀다. 이런 관점에서 시복식은 신앙이 토착화되는 형식이 된다. 왜냐하면  복자들은 교회를 통해서 그들의 덕행스러운 생활이 검증되어 인정되었기 때문에 그 어떤 장소와 문화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인한 충실성으로 응답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성덕에 대한 그 어떤 문화에 대한 반감이 섞인 선입견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교구에서 시복식이 거행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진정한 축복이다. 왜냐하면 교구에서 거행되는 시복식을 통해 개별 신자들이 표징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제 단체들도 시복식의 영광스러운 거행을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된 시복식은 교회적인 근원적 체험의 시간이 된다.

시복식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관련 국가 권위와 연관된다.  사실 시복식을 잘 준비하고 성공적으로 잘 마치기 위해서 창조적이며 성실한 협력을 이들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정부’와의 협력이 왜 필요한가? 그 답은 복자들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복자들은 단순히 신자들의 영적 성숙을 촉진했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빈곤과 박탈되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상처를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치유하는데 자신들의 애덕과 성덕을 통해 협력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복자들은 그 사회에 선익을 제공한 은인들이라고 특정될 수 있다. 그들은 이웃들의 현세적 선익들을 위해서도 헌신했기 때문이다. 복자들은 종교적 권위와 국가 권위 사이에 기적적인 평화를 조성하는데 노력한 이들이다. 그들은 일치시키는 사람들이지 분열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복수하기 보다 용서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고 원수들을 사랑하며 박해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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