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강론. ‘당신의 아들을 내게 주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5일 예수 마리아의 스타니슬라브(Stanisław od Jezusa i Mary)와 마리아 엘리사벳 헤셀블라드(Maria Elisabeth Hesselblad)의 시성 미사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집전하였다.

교황은 미사 강론을 통해 예수님 수난과 항구적 일치를 이룬 성인들이 주일 복음의 내용인 희망의 복음을 경험하신 분들이라고 언급하였다.

하느님은 모든 죽음 앞에서 인간들 스스로가 알아서 하라고 모른척 하지 않으시며, 당신에게로 데려오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부활은 죽음에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과 함께 바오로 사도처럼 회심을 통해 하느님의 증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도 있음을 언급하였다. 오늘날에도 어머니인 교회에 죄를 씻어 새롭게 태어난 이들을 교회로 돌려주신다면서, 화답송의 후렴인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를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함께 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하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우리가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신앙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으로 이끌어 줍니다.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현현이신 빛나는 모습을 지니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을 위로하시는,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에서 나타난 희망의 복음입니다. 당신 부활의 능력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시도록,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영원한 일치를 이루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수난은 고통스런 울부짖음과 우리에게 분노를 불러 일으키는 고통과 죽음의 경험에 대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답변입니다. 성모님께서 그러하셨듯, 십자가에서 도망치지 않고, 예수님 곁에서 고통스러워도 머물며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로마4.18 참조)  

오늘 성인으로 선포된 예수 마리아의 스타니슬라브와 마리아 엘리사벳 헤셀블라드도 같은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항구적으로 일치하는 삶을 살았고 그분들을 통해 부활의 힘이 드러났습니다. 

주일의 제1독서와 복음은 부활의 경이로운 표징을 보여줍니다. 첫번재는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이고 두번재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두 번의 경우에 사망한 이들은 모두 과부들의 어린 아들들로서 다시 살아나 어머니들에게로 갑니다. 

유다인이 아니었음에도 엘리야 예언자를 자신의 집에 받아들인 사렙타의 과부는 예언자와 하느님께 화가 납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손님으로 머물고 있을 때 아들이 병에 걸려 자신의 품 안에서 숨졌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이 여인에게 말합니다. ‘아들을 이리 주시오’(열왕기 상 17.19) 이 말이 핵심입니다. 우리 죽음 앞에서(어떤 형태였든지) 드러나는 하느님의 태도입니다. ‘당신이 데려가 해결하시오’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이리 주시오’라고 말합니다. 예언자는 아이를 받아 옥상 방으로 데려가서 ‘하느님께 부르짖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은 것 같은 죽음을 보여드리며,  혼자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의 목소리를 들으신 것은 바로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시며 예언자를 통해 기도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입을 통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들을 이리 주시오’ 그리고선 살아있는 아들을 어머니에게 돌려줍니다.

하느님의 자애는 예수님에게서 온전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들었습니다.(루카 7.11-17)  아직 젊은이였던 자신의 외아들을 무덤으로 데려가고 있는 갈릴레아 나인의 과부에게 ‘측은한 마음’(13절)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가 관에 손을 대시며 관을 메고 가는 이들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눈물로 범벅된 불쌍한 여인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셨을 것입니다. ‘울지 마라’(1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청하기라도 한 듯 ‘당신의 아들을 이리 주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 앞에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하여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청하십니다.  이 젊은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일어나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습니다’(15절) 마술사가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가없는 측은지심이 만들어낸 육화되신 하느님의 자애의 입니다.

또 다른 부활이 바오로 사도에게도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적이며 무서운 추적자였던 그가 증인이 되어 복음을 선포하게 되는 변화를 겪습니다.(갈라1.13-17 참조)  극단적인 변화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가 준 선물입니다. 그를 ‘선택’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에게 당신 아드님께서 드러나 선포되어 질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15-16절) 바오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그에게만 드러내 보이신 것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를 통해 당신이 잘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육과 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새기신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사도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닌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들 모두와 각자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삶을 주는 은총의 승리가 빛나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하십니다. 지금과 영원까지 우리 모두가 속한 어머니인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아들들을 내게 주시오’ 우리의 모든 죄를 당신이 데려가셔서 죄를 씻어 살아있는 모습으로 교회로 돌려 주십니다. 자비의 희년인 올해 동안 특별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오늘, 교회는 부활 신비의 증거인 두명의 자녀들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 모두 시편 작가의 노래를 영원히 부를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주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을 영원히 찬송하오리다’(시편 30.12,13) 우리 다함께 한 목소리로 외쳐봅시다. ‘주님, 저를 구하셨으니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화답송 후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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