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는 어떻게 시복, 시성을 진행하는가?


교회는 어떻게  시복, 시성을 진행하는가?

2014년 8월 16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들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했다. 그리고  그 기념일은 매년 5월 29일로 정해져 발표되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의 시복이 교황에 의해서 지역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이었다. 왜냐하면 2005년 9월 29일 교황청 시성성의 발표에 따라서 통상적으로 시복식은 로마가 아닌 개별 교구나 다른 지역에서 거행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교황의 행위임에도 통상적으로 시성성 장관이 주례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국을 방문하여 광화문에서‘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특별한 은혜는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서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에 대한 시성을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었다.  그 시성식은 교황의 첫 번째 한국 교회 방문이란 역사적 사실 외에도 교황이 로마 베드로 대성전  밖에서 거행한 첫 번째 시성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통하여 한국의 모범적인 신자들을 시복, 시성에 올리도록 힘을 기울이고 있다.  2016년 4월 26일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교황청 시성성 교령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서명하여 그 다음 날인 27일에  그 사실이 발표되었다. 또한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그 외에도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에 대한 교황청 시성성 ‘장애없음’ 교령을 시성성으로부터 2015년 7월 15일에 접수하여 그 작업을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고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도 진행 중에 있다.

시복시성을 위한 한국교회의 열망과 노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5장에 나오는 ‘교회의 보편적 성화 소명’의 정신을 오늘을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빛나는 성덕에 도달한 한국의 복자들과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으며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의 순례길에서 나침판 역할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된 신앙인으로 살면서 순교나 영웅적 성덕에 도달한 신앙 선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시복이 되며 시성이 되는지 그 절차를 법적으로만이 아니라 그 신학적 사목적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문을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신앙 성숙을 위해 유익할 것이다.

현재 교황청 시성성 장관으로 있는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은 ‘교회는 어떻게  시복, 시성을 진행하는가?’에 대한 간단한 글을 발표한 바 있다. 현 시성성 장관의 이러한 관점은 그가 교회의 시복, 시성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교황을 대리하고 있다는 면에서 신자들에게 중요한 안내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다음의 글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발표한 내용이다.

1.  거룩한 교회, 성인들의 어머니인 교회 [1]

하나이고 거룩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교계에 소속된 사람이든 교계의 사목을 받는 사람이든 다 거룩함으로 부름받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세례 받은 사람들은 “성도들”이라고 불렸었고(사도 9,13.32.41; 로마 1,7; 1코린 1,2)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마 12,1)로 변화되어 그 이름에 맞는 삶을 살도록 초대된 사람들이었다.

세례성사의 은총은 신앙과 생활 속에서 올바른 삶을 사는 새로운 피조물들이 되도록 신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완전히 새롭게 해 준다. 초기부터 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들의 생명을 바치면서 복음을 특별하게 증언한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들을 순교자들이라고 하였거나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면서 이웃에게 헌신적인 애덕을 실천한 사람들을 증거자들이라고 해 왔었다.

성덕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체성이고 성인들은 역사 안에서 그 신앙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녕 성인들은 복음의 살아있는 수호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덕행으로 가득한 삶은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세상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덕이란 무엇인가?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성덕은 인간 영혼 자신과 그 행위들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드리는 상태이다”. 성덕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고 마음과 정신의 온 힘을 다해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이다. 성인들은 그들이 순교자들이든 증거자들이든 온전히 하느님과 평화와 정의, 그리고 진리인 그분의 나라에 전념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성덕의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를 위해 헌신한 생활과 하느님의 현존의 표징으로서 이웃에 대한 헌신적인 애덕의 실천으로 일관한 생활이 바로 성덕의 내용이란 것이다(마태 25,34-36 참조).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와 같이 우리 시대에도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와 같은 순교자들이 있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시에나의 성 카타리나,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와 같은 증거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했고 온전하고 희생적인 애덕을 이웃에게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스승이시며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자신들 속에서 빛내고 있다. 캘커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는 “그리스도와 더 비슷하게 되는 것이 성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선포한 행복은 그리스도교 성덕의 헌장을 형성한다(마태 5, 3-12)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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