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기도는 요술봉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25일 수요일 오전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있었던 알현을 통해 쉼없는 기도와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탁을 통한 일치를 권하였다.

루카복음의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루카 18.1-8)를 통해 기도는 낙심하지 말고 지속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불의한 재판관도 계속된 요청에 응답하는데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자녀들의 기도를 빠르게 들어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요술봉같은 응답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는데,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느님께 의탁하여 그분 뜻에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하였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느님과의 일치라고 전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알현 가르침 전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 말씀은 중요한 가르침을 담은 비유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1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 가끔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과부와 재판관의 이야기를 예로 드십니다.

재판관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판결을 내려줄 수 있는 권력자입니다. 성서적 전통에 따르면 재판관들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신앙심이 깊으며, 진실하고 공정하며, 부패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탈출 18.21) 오늘날에도 귀 귀울여 들을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이 재판관은 반대로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2절)고 되어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도 없는 심술궂은 재판관이었으며 율법도 상관없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하고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과부 한사람이 정의를 구하고자 다가옵니다. 과부들은 고아와 외국인과 함께 사회의 가장 약자들입니다. 돌보아주는 사람도 없고 취약하며 권리를 행사하기에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법에 의해 쉽사리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홀로 보호해주는 사람없는 가난한 과부는 무시당하며 정의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고아들이나 외국인 혹은 이민자들 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매우 강력했습니다. 재판관의 무관심 앞에서 과부는 자신의 유일한 무기를 꺼내듭니다. 정의가 실현되도록, 짜증이 날만큼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요청합니다. 이러한 끈기는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합니다. 재판관은 사실 자비로서 마음이 움직였거나 양심에 응답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5절)라는 생각에 판결을 내려 준 것입니다.

비유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두가지 결론을 내리십니다. 과부가 의롭지 못한 재판관을 지속적인 요청을 통해  설득할 수 있었다면, 하물며 선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오죽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며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지 않으시고 즉시 실행해 주실 것입니다. (7-8절 참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지치지 말고’ 기도할 것을 권고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기도가 효과가 없다고 여겨질 때 피곤하고 지친 순간을 느낍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확신을 주십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달리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의 소리를 빠르게 들어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방법과 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도는 요술봉이 아닙니다! 요술봉이 아니예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분께 향하는 믿음을 지킬 수 있고 그분께 의탁하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직접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요! 히브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히브리 5.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에, 처음 이 부분을 보았을 때 미덥지 못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가 착각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죽음에서 구하시어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 걸어야 했던 길은 죽음을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들으신 청은 겟세마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를 뜻합니다. 번뇌 중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수난의 고통이라는 잔에서 해방시켜 주십사고 요청하십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향한 무한한 신뢰의 기도로 그분 뜻에 따라 미련없이 맡겨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기도의 목적은 두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어느 것도 하느님 아버지와의 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 입니다. 소망을 변화시켜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 입니다. 누구든 이를 행한다면 그 무엇보다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느님과의 일치를 기도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비유는 질문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니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이 질문을 통해 모두에게 경고하십니다. 응답이 없는 것 같아도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기도 없이는 믿음이 흔들리기에 기도가 믿음을 지켜줍니다! 비유말씀에서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낸 과부의 믿음처럼 지치지 않고 인내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는 믿음을 주님께 청합시다. 기도를 통해 자비로운 사랑으로 자녀들을 채워주는 아버지와 같으신 하느님의 자애로우심을 경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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