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적 희망 속에서 인내한 고통은 삶의 기쁨을 열어준다.


그리스도교적 희망 속에서 인내한 고통은 삶의 기쁨을 열어준다.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기쁨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수난에 앞서서 제자들이 슬픔에 빠지게 될 것이지만 그 슬픔은 기쁨의 목소리로 변할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예수님은 해산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사용하신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그 여인은 고통 속에서 희망하며 기쁨에 넘치게 된다. 교황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이 모습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문제에 직면하여 고통을 겪고 박해를 받을 때 기쁨과 희망이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어떤 마취 상태가 아닙니다. 고통은 고통입니다. 그러나 기쁨과 희망으로 인내한 고통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쁨을 열어 줍니다. 주님이 예를 드신 이미지는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것들은 우리 신앙을 뒤흔드는 아주 나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과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갑시다. 왜냐하면 이 고통이 지나면 새로운 인간이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해산하는 여인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쁨과 희망은 영구한 것이며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쁨과 희망은 단순한 즐거움이나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교황은 기쁨과 희망은 함께 진행된다고 말한다. “희망이 없는 기쁨은 단순히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쁨이 없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런 희망은 진정으로 낙관적인 태도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쁨과 희망은 함께 진행하면서-이런 말을 제가 해도 될 것 같은데요- 교회가 전례를 통해서 아무 부끄러움 없이 외치는 ‘찬미하여라, 교회여’라는 폭발적인 기쁨을 만들어 냅니다. 기쁨에 넘치는 것, 그 어떤 형식도 갖추지 않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기쁨이 강할 때 그 어떤 형식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쁨입니다”.

자신을 떠나는 것

“주님께서는 인생에 있어서 문제를 늘 갖고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고 교황은 말하면서 “기쁨과 희망은 카니발 같은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무엇”이라고 강조한다. “기쁨은 희망을 강하게 하고 희망은 기쁨 속에서 자랍니다. 이렇게 함께 진행합니다. 이 둘은 교회가 그리스도교 덕행들이라고 하는 이 기쁨과 희망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알려줍니다. 기쁨에 찬 사람은 자신 속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희망은 당신을 밖으로 끌어내고 하늘의 해변가로 당신을 인도하기 위해 당신을 밖으로 끄집어 냅니다. 희망과 기쁨으로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라지지 않는 기쁨

“인간적인 기쁨은 어떤 어려움이나 이런저런 것에 의해 제거될 수 있습니다”라고 교황은 설명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 기쁨을 주시고자 하신다. “그 기쁨은 영구적인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지속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더 이상 그분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슬픔 속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나타나서 제자들을 일깨웁니다”라고 교황은 주님께서 승천하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루카 복음은 이것과 관련하여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처음으로 우리의 인성이 하늘에 올가 가게 된 것을 아는 기쁨”이라고 교황은 말한다. “주님께 도달하여 그 속에서 생활하는 희망은 교회 전체를 감싸 안는 희망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기쁨을 교회에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쁨이 희망의 표현이고 강한 희망이며 우리 인생 안에서 기쁨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기쁨과 희망을 지켜주시어 아무도 이것을 우리에게서 앗아가지 못하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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