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성령의 충격을 반대하는 일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성령의 충격을 반대하는 일들이 있다.

28/04/2016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성령의 충격을 반대하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의 길을 확신에 차서 걸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이것은 오늘 아침 산타마르타에서 교황이 행한 강론이다.

교회 안에서 뜨거운 토론들이 있지만 성령께서 주인공이시다.

교황은 사도행전의 그 유명한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설하면서 ‘교회의 주인공’은 성령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초기부터 성령께서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을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모든 것을 행하셨고 교회가 앞으로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많은 문제들도 있고 박해가 가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의 분노와 저항이 있기도 했지만 신자들이 신앙 안에 머물 수 있는 힘을 주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이 경우 성령을 거부하는 양상은 두 종류이다. 하나는 “예수님은 오직 선택된 민족을 위해서만 오셨다”라고 믿는 이들의 거부반응이다. 다른 하나는 할례에 대한 모세의 율법을 이교도들 중에 회심한 신자들에게도 적용하기를 원한 사람들의 저항이다. 교황은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성령께서는 새로운 길에 마음을 열도록 하셨습니다. 일종의 성령이 가하신 충격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할 것인가? 이야기는 ‘적지 않은 논란이 일어났다’라고 시작합니다. 이 문제를 뜨겁게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인공이신 성령의 힘을 지니고 있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을 새로운 상황으로 인도하시고 전에는 없었던 상황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상상하지도 않았던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이방인들도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에 두려움을 지닌 사람은 마음에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손에 뜨거운 감자를 들고 있었으며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이기로 했고 거기에서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성령께서 이방인들에게 내리셨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결국에 모두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듣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을 가지면 안 됩니다. 듣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너는 무엇을 왜 생각하냐?’는 것을 듣는 것. 겸손하게 듣는 것. 그들은 다 듣고 난 후에 그리스 공동체에, 곧 이교도에서 회심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해결되었고 괜찮으니까 앞으로 계속 그렇게 가도 된다’는 말을 전하면서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몇 명의 제자들을 보내기고 결정했습니다”.

세속적인 새것과 성령의 신선함

회심한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을 의무가 없었다. 이것은 편지를 통해서 전해진 결정 내용이다. 그 편지에는 ‘성령께서 주인공이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제자들은 성령과 우리가 결정했다고 한다. 이것이 교회의 길이라고 교황은 말한다. “새로운 현실 앞에, 그러나 유행하는 옷처럼 세속적 새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충격을 주시는 새로움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늘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갑니까? 교회는 문제를 어떻게 대면하고 풀어갑니까? 모여서 듣고 토론하며 기도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이 현재까지 교회가 걸어온 길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발생하거나 전혀 없었던 것이 일어나면서 성령께서 우리를 놀라게 하실 때 늘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공의회를 반대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말하는 것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까. 오늘날에도 이런저런 모양으로 반대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앞으로 가십니다. 교회의 길은 이런 것입니다. 함께 모여서 듣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여서 일을 하는 교회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교회의 친교가 표현됩니다. 친교를 누가 이룹니까? 성령께서 이루십니다. 성령께서 주인공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성령께 순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성령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초기부터 교회는 성령의 충격 속에 살아 왔습니다.

“성령께서는 가끔 우리를 멈추어 세우십니다. 바오로에게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다른 곳으로 우리를 보내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는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인내와 용기를 주시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 확신에 차서 걸어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반대들을 극복하고 순교의 순간에도 충실하도록 하십니다. 주님께 어떻게 교회가 앞으로 나갈지 이해할 수 있는 은총과 성령의 충격을 처음에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도와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성령께 순응하는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이 우리 각자와 모든 교회에게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도록 은혜를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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