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체념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16일 화요일, 미초아칸(Michoacan)주의 주도 모렐리아(Morelia)의 베누스티아노 카란사(Venustiano Carranza) 스타디움에서 멕시코의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들과 미사를 봉헌하였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폭력과 부패와 마약과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할 것을 요청하였다.

교황은 모렐리아에 도착하여 연도에서 바티칸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였다.

미초아칸은 멕시코 마약루트의 핵심인 지역으로, 가난과 실직, 마약에 의한 폭력과 부패가 만연해있다.  교황의 모렐리아 방문에는 작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모렐리아 교구장 알베르토 수아레스 인다(Alberto Suarez Inda) 추기경이 동행하였다.

교황은 강론에서 기도를 강조하면서 일상에서 기도를 배워나갈 것을 호소하였다.  또한 폭력과 부패와 마약과 인권유린과 무관심의 현장에서 유혹에 넘어가지 말것을 요청하면서 사제와 수도자들이 포기하지 말라고 청하였다.  그들이 자신의 책무를 포기하면 복음선포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마저도 뒤틀리게 된다면서 하느님께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기를 청하였다.

교황은 스페인이지만 인디오가 되었던 바스코 바스케스 데 키로아(Vasco Vazquez de Quiroga, 1470년-1565년) 주교를 상기시키고 무시당하고 시장에서 노숙을 하며 땅에 떨어진 빵을 줏어먹던 이들을 보며 포기하지 않고 신앙으로 불의를 멈추게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음을 언급하였다.

미사에서는 특별히 미초아칸의 초대 주교이며 인디오들의 수호자였던 데 키로아 주교의 성작을 사용하였다.

아래는 교황의 강론 전문

우리들 사이에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 말해준다면 어떻게 사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사는지 말해준다면, 어떻게 기도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 보여주는 것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하느님을 믿도록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왜냐하면 우리의 삶이 기도하는 것을 말하고, 기도가 우리의 삶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걷거나 말하거나 듣는 것처럼 배우는 것 입니다. 기도의 학교는 삶의 학교이며 삶의 학교에서는 기도의 학교를 만듭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 티모테오에게 가르침을 주거나 신앙 안에서의 삶을 찬양할 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기억하십시오’  신학생들이 신학교에 입학할 때 여러사람이 제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더 깊고 더 지적인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 ‘그렇다면, 집에서 배운대로 기도를 계속 하세요. 조금씩 여러분이 성장하듯 기도가 성장할 겁니다.‘ 삶처럼 기도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신비, 당신 삶의 신비를 당신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들에게 먹고, 잠자고, 치유하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시면서 하느님의 아들이 의미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당신 삶과 사생활까지도 나누도록 그들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분이 함께 해주시면서 육화된 아버지 하느님의 삶을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시선과 힘있는 걸음과 ‘주님의 기도’라는 놀라운 기도를 알려주시면서 경험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전해주셨을 때 일상의 혹은 반복의 ‘맛’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삶과 경험과 고유함의 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주님의 기도’를 말씀하시며 기도의 삶과 삶의 기도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똑같이 초대해 주십니다. 우리들의 첫번 부르심은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우리 삶과 역사 안에서 경험하도록 하신 것 입니다.  당신의 첫번째 부르심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랑과 그분의 자녀됨의 역동성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첫번째 부르심은 ‘주님의 기도’를, 바오로가 ‘아빠’(abba)라고 강조하였듯, 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 입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영광이 동기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 1서 9.16 참조)

그분의 삶에, 거룩하신 삶에 동참하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우리 수도자들과 신학생들과 사제들과 주교들은 동참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듣고 본 것을 증언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기업의 유일한 고용인들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고 그리 되어서도 안도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삶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았고, 기도하고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그분의 마음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말하는 것이 선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어젯밤 영면하신 주교님처럼 우리의 삶으로 ‘주님의 기도’를 말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선교이겠습니까.   

‘주님의 기도’는 우리의 매일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이런것들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님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어제와 오늘의 제자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어떤 유혹이 우리의 삶의 생각 안에서, 우리와 동행하며 자라나고 있을까요?  폭력과 부패와 마약과 인권유린과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일회성에 의해 조성되는 환경으로 생기는 유혹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성직자로서, 수도자로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혹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 삶이 구조적으로 종신직이라는 현실에서 오는 유혹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을 체념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실 앞에서 악이 선택하는 강력한 무기는 체념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삶이 그런걸.’ 체념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체념은 우리가 길을 만들어 걸어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체념은 우리를 두렵게하고 안전해 보이는 우리의 제의방에 숨어버리게 만듭니다. 체념은 우리가 선포를 하지 못하게 만들며 찬양하지 못하게 하고 기쁨을, 찬양의 기쁨을 앗아갑니다. 체념은 우리의 계획을 무산시킬 뿐만 아니라 혁신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는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 줍니다.  

우리의 기억 속의 유혹의 순간들을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한 일들의 원인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모든 것이 우리가 시작한 것은 아니고 우리가 끝을 내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까지 우리를 이끈 역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아들이 되어준 이를 공격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죄 때문에 나를 직무로 끌어내고, 사제직이라는 방향키를 돌렸습니다. 나에게, 위대한 일을 실천하는데 무익하고 능력없는 나에게, 노를 저을 줄 모르는 나를 미초아칸의 첫번째 주교로 선택하였습니다.’(바스코 바스케스 데 키로아, 사목교서, 1554)

제게 데 키로아 주교님의 지팡이와 성작으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추기경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인디오가 되어준 스페인사람’이며 타타 바스코(Tata Vasco)라고 알려진 복음선포자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푸레페차(purhépecha) 인디오들이 살았던 현실을 ‘팔려나가고, 모욕을 당했으며, 시장의 노숙자요, 땅에 버려진 빵을 줏어먹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유혹에서 멀어지게하고, 체념하지 않고 신앙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불의가 만연한 현실에 ‘숨’을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의 고통의 아픔을 기도로 만들었고,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인디오들에게서 ‘타타 바스코’라고 호칭되었습니다. 푸레페차어로 타타는 아빠를 의미합니다.

아버지, 아빠, 타타, 아바

이것이 기도이며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표현입니다.

아버지, 아빠, 아바, 우리를 체념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고, 게으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며 기억을 잃지 않게 해 주소서. 우리의 어른들을 잊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고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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