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성서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하여


1월 13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있었던 일반 알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서가 바라 본 자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시작했다. 이 주제는 한 동안 일반 알현 때 교황의 교리 교육의 주제가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을 들으며 자비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약으로부터 시작합시다.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계시로 우리를 준비시키고 이끕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아버지의 자비가 드러났습니다".   

"성서 안에서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으로 소개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얼굴과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탈출기가 말하고 있듯이 하느님께서 스스로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며 그렇게 정의하셨습니다.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탈출 34,6). 다른 부분들에서도 같은 양식의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금씩 표현이 다르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사람을 용서하는 데에 지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강조합니다(요나 4,2; 요엘 2,13; 시편 86,15; 103,8; 145,8; 느헤 9,17 참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서의 이 말씀들을 하나 하나 함께 봅시다".

"'주님은 자비하시다'. 이 말씀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부드러운 태도를 불러 일으킵니다. 사실 성서에서 사용한 히브리어 단어는 어머니의 내장 또는 자궁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 단어가 암시하는 인상은 아기를 팔에 안고 있는 한 어머니처럼, 오직 사랑하고 보호하고 도와 주고 언제든 모든 것, 자기 자신마저도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어머니처럼 우리에 대하여 마음이 벅차 오르고 마음이 누그러지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것이 이 단어가 암시하는 인상입니다. 좋은 본능적인 의미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너그럽다'고 쓰여 있습니다. '너그럽다'는 말은 호의를 베풀다는 뜻으로 측은한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그분이 크고 넓다는 뜻에서 약한고 가난한 이에게  구부리는 것, 언제나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루카 복음서(15,11-32)가 전하고 있는 비유의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작은 아들의 가출에 대하여 노여움에 갇혀 있지 않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낳았습니다.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에게 달려가 아들을 끌어 안는 아버지, 아들이 자기 잘못을 고백하게 놔두지 않는 아버지, 오히려 그의 입을 막는 아버지, 아들을 다시 찾은 것에 그렇게 큰 사랑과 기쁨을 보이는 아버지, 그런 다음 큰 아들, 분개하여 축제를 벌이기는 원치 않는 큰 아들, 언제나 집에 머물면서 아들로서보다 종처럼 산 큰 아들을 불러오라고 사람을 보내는 아버지, 그러고는 그에게도 허리를 굽히고, 들어와 사랑에 마음의 문을 열라고 초대하는 아버지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비의 축제에서 제외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하나의 축제입니다!".     

"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하여 성서는 '분노에 더디'시다고 말합니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숨을 길게 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인내하고 참으며 길고 깊은 숨을 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다릴 줄 아십니다. 그분의 시간은 인간의 참지 못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다릴 줄 아는,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 좋은 씨가 성장할 시간을 주는 지혜로운 농부와 같으십니다(마태 13,24-30 참조). 

"마지막에, 주님께서는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다.'고 선포합니다. 하느님을 이렇게 정의하다니 정말 아름답습니다! 여기에 모든 게 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위대하시고 전능하십니다. 그러나 이 위대하심과 전능은 우리, 그렇게 미천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에서 펼쳐집니다.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애'라는 말은 애정, 은총, 호의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공적 때문이 아니라 무한한 자비 때문에 첫 걸음을 떼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죄마저도 멈추게 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걱정입니다. 그것은 죄를 넘어 악을 이기고, 그를 용서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진실', 한 없는 충실. 모세에게 계시하신 하느님의 마지막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진실, 충실은 결코 줄어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시편이 말하고 있듯이 잠들지 않고 우리를 생명으로 데려가기 위해 항구하게 우리를 지키고 있는 보호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네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그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신다.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 주님게서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시고 네 생명을 지키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프란치스고 교황은 원고를 보지 않고 덧붙여 말했다. "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당신 자비에 충실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멋있는 말씀을 하나 했습니다. '당신이그분 앞에 층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충실하시리니,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2티모 2,13). 자비의 충실은 하느님의 고유한 본성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의 말로 교리 교육을 마쳤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온전히 그리고 언제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튼튼하게 변함 없이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확고함입니다. 이 자비의 희년에 우리를 온전히 하느님께 맡깁시다. 그렇게 해서 이 '자비하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고 사랑과 진리에 충만하신 하느님'께 사랑 받는 기쁨을 맛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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