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예수님께서 오시여 역사를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집전하였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세상에 불의가 있지만 성모님의 순명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하느님의 약속을 이루셨으며 그리스도 복음의 은총으로 새로운 길을 인류에게 열어 주셨다고 전하였고. 마리아에게 자비와 평화를 주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청하였다.

아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갈라 4.4)

‘때가 차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말이 무슨 뜻이 있을까요? 우리가 역사의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착각에 빠지는 것 입니다.  로마는 군사력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지역을 정복하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다섯번의 내전 후에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스라엘도 로마제국에 의해 정복당하였고, 선택된 백성들은 자유를 잃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는 그리 좋은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 지리적 환경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다른 해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관점으로부터 ‘찼다’라는 말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인류를 위한 시간이 도래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온전히 하실 순간이 왔다는 것을 결정하신 순간입니다.  역사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세상에 오심이 역사를 온전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느님의 아드님의 탄생은 시간을 새롭게 하며,  새로운 시대와 구약의 약속들이 모두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시대를 엽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적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1.1-3) 때가 찬 것은 우리의 역사에 하느님 자신이 직접 현존을 드러내신 것 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굿간의 가난함에서도  밖으로 빛나는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 이 ‘왜소’한 아기가 되심으로 용기를 얻고 노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 덕에 우리의 때가 찰 수 있었습니다.

이 신비는 인간 역사의 극적인 경험과 끊임없이 대립하게 됩니다. 하느님 현존의 표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매일 하게되지만 오히려 그와 상반되는,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부정적인 새로운 상징들을 만나게 됩니다. 때가 찬 것이 아니라, 인류라는 가정을 매일같이 상처입히는 불의와 폭력의 셀수 없는 형태들이 오히려 그 ‘때’가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불의가 계속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과 힘있는 자들의 오만함으로 힘없는 이들을 우리 세상의 가장 변방으로 몰아내는 일들이 지속되는 것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자문하곤 합니다.               얼마나 오랜시간 악한 인간들이 세상에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드는 폭력과 증오를 점철시킬지 되묻게 됩니다. 우리가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전쟁과 기아와 박해로, 자신들의 근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들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때가 찼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통이 터져나오고 죄로 물드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때가 찼다’는 것과는 반대의 상황인 것 같습니다.  

뿌에리 깐또레스 여러분은 어제 제가 이야기한 세번째 답변이 바로 이 이야기 입니다. (‘교황. 노래하는 소년소녀들에게 노래하며 신앙의 여정을 가기를 당부’ 기사 참조)

그러나 이러한 급물살도 우리 세상으로 흘러 들어오는 ‘자비의 바다’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우리 모두는 새롭게 태어나고 상호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무관심을 극복하며 나눔을 가로막고 거짓된 중립을 떠나서 이 바다에 잠기도록 부름 받았습니다.구원의 때가 되었다는 희망을 주는 그리스도의 은총은 그분과 함께 그분을 도와 그 어느때보다도 정의롭고 형제적인 세상,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조화로서 모든 사람과 모든 창조물이 평화안에서 살도록하는 세상을 건설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교회는 평화의 상징으로서 마리아의 성스러운 모성애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성모님으로 인해 오래된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천사의 말을 믿었고 아들을 잉태하였으며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모님을 통해, 성모님의 ‘네’라는 응답을 통해, 때가 찼습니다. 우리가 방금 전 복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히 되새겼다’(루카 2.19)라고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 항해해야 할 길을 알려주는 지혜의 왕좌로, 예수님의 기억이 가득 찬 배와 같은 모습으로 드러나십니다.  오늘 마리아께서는 개개인과 가족과 나라와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도록 해 주십니다. 철학적 사유나 정치적 협상이 다다를 수 없는 것이며, 그리스도 복음의 은총에 의한 신앙의 힘이 주는, 사유와 협상의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복되신 마리아여, 당신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이 세상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으셨기에 더욱 복되십니다. 믿음으로 가득하여 예수님을 당신 마음에 먼저 품으셨고, 당신 태중에 품으셨으며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강론 215.4 참조) 당신의 영광을 기리는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우리에게 당신의 아드님, 세상에 자비와 평화를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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