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행려자들을 위한 기도, 워싱턴 DC


워싱턴 DC에서 행려자들과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이 불공평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이길 힘을 준다고 말하였다. 백악관과 미의회 건축공사 현장에서 일했던 아일랜드 이주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1794년 건축되어 워싱턴에서 가장 오래된 세인트 페트릭 성당에서 교황이 행려자들과의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숙인들에게 ‘해결사’인 요셉 성인을 기억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요셉성인은 어려운 상황과 자주 마주쳤는데, 특히나 출산을 앞둔 마리아와 함께 노숙자가 되어야 했다. 성서에서는 묵을 곳이 없었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그 덕에 하느님의 아드님은 노숙자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다고 말했다.

교황은 그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요셉성인처럼 그들도 매일 자신에게 ‘왜 노숙자가 되었고, 왜 살 곳이 없는지’를 묻고 있을거라면서 ‘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살 곳이 없는지’ 우리 스스로도 질문해야 한다고 하였다.

주택부족의 사회적 도덕적 혹은 그 어떤 정당성도 찾을 수 없지만 우리는 하느님께서 절대 우리를 고통속에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신앙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면서 ‘사랑하고, 연민과 봉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행려자들과 기도를 통해 서로가 형제 자매로 볼 수 있도록 배운다고 마무리 지었다.

 

행려자들을 위한 교황의 말씀

워싱턴 DC의 세인트 패트릭 성당에서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제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은  ‘고맙습니다’ 입니다. 저를 환영해 주셔서 감사하고 이 모임을 가능하도록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사랑하고, 사랑해 왔고 제 인생에 매우 중요한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은 언제나 도움과 영감을 주었습니다. 제가 언제든 ‘해결사’가 되어야 할 때 찾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제게 요셉 성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러분의 모습이 그분을 기억하게 합니다. 

요셉성인은 인생에서 어려운 순간들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성모님께서 출산이 가까우셨을 때 입니다. 성서에서는 우리에게 ‘그들이 거기(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였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6-7)

성서는 명확히 말합니다. 그들이 들어갈 방(자리)이 없었습니다. 저는 요셉성인께서 출산을 준비하는 아내를 데리고 쉴 곳도 집도 머물 곳도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노숙자가 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지붕없는 노숙의 생활로 당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요셉성인께서 어찌 생각하시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 집이 없는 것이지? 우리는 왜 노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우리는 왜 집이 없는거야?’ 이건 여러분들도 매일 하시는 질문일 것입니다. 성요셉 성인처럼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왜 살 곳이 없는 노숙자인 것이지?’ 우리 모두가 자문해야합니다. 왜 우리의 형제 자매가 살 곳이 없는지,  그들이 왜 노숙자가 되었는지 말입니다.

요셉성인의 질문은 시간을 넘어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인간 역사안에서 노숙자들은 늘 있어왔습니다.

요셉성인은 그것에 질문을 던진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그분은 신앙인이십니다. 믿음은 요셉성인께서 모든 것이 어둠으로 느껴질 때 빛을 찾을 힘을 주었습니다. 믿음은 삶에 문제가 발생하였어도 그의 목표를 지속하도록 해 줍니다. 신앙 덕분에 요셉성인께서는 뒷걸음 치도록 만드는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불의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때 신앙은 어둠을 밝혀 줄 빛을 줍니다. 믿음이 요셉성인께 해주셨듯, 우리 삶에서 모든 이의 모든 순간에 하느님 현존에 열려있도록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 한분 한분과 우리 한사람 한사람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주택 부족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정당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불의한 많은 상황들이 있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고통받고 계시며 그 상황들을 우리와 함께 겪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모든이와의 유대를 바라셨음을 압니다. 모두가 그분의 우애와 도움과 사랑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받고, 눈물을 흘리며 불의에 의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

믿음은 하느님께서 우리편이시며,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의 자선에 동반해 주심을 알게 합니다. 끊임없이 우리와 모든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를 사랑과 연민과 타인에 대한 봉사로 불러주시는 그분의 부르심에서 자선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 삶의 문을 노크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빛과 불꽃놀이 특수효과의 마술처럼 하시는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 자매처럼 우리 옆에 있는 이들의 모습으로 우리의 문을 계속 노크하십니다.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가장 효과적으로 돕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를 형제 자매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 우리가 가끔 잊어버리는 아름다운 진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는 것을 배웁니다. 타인을 형제 자매로 보도록 가르칩니다. 기도안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이도 없습니다, 아들과 딸들이 있고 형제와 자매가 있습니다. 기도에서는 상류계층도 하류계층도 없이 모두 형제입니다.

기도는 우리마음이 불의의 모습 앞에서 불감증이나 냉담해지지 않을 힘을 줍니다. 기도안에서 하느님은 자선에 마음을 열라고 우리를 지속적으로 부르십니다.

함께 기도함이 얼마나 좋은지요. 서로 형제 자매가 되고, 서로 필요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곳에서 함께 만나니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지원과 친근함이 필요합니다. 저는 모두 함께 기도하도록 초대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기쁨을 경험하도록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준비 되셨습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주님의 기도)

 

제가 떠나기 전 하느님의 축복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기 6,24-26)

그리고 저를 위한 기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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