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니페로 수사 성인품 미사 “하느님의 온정을 증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


이 땅에 복음의 기쁨을 증언할 줄 알았습니다. 열린 교회를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워싱턴 DC의 성모영보 바실리카 국립대성당 후니페로 세라 수사의 성인품 미사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이다.

 

강론 전문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 우리 삶에 주는 강한 초대입니다.  "기뻐하십시오." 거의 명령하듯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온전한 삶과 의미있는 삶, 기쁜 삶을 체험하도록 전하는 초대입니다. 마치 바오로 사도가 우리가 느끼고 살고 있는 마음의 소리를 하나하나 듣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우리를 기쁨으로 초대하지만 자기만족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일상의 긴장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우리 삶의 많은 상황들이 기쁨의 초대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조금씩 우리의 마음이 무디어져가는 상황에 익숙해져 일상에서 스스로 회피하도록 만듭니다. 

이러한 회피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면 그러길 원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습관이 시간을 지배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면 그러십니까? 우리는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이 무뎌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의 기쁨을 어떻게 우리 삶의 다양한 상황들안에서 심화시킬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떠나십시오! 선포하십시오!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고 경험하십시오. 오직 직접 살아보고 체험할 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정신은 우리를 편암함에 순응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마음 앞에서 "우리가 서로 필요한 것을 느끼는 것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229). 우리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의 원천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그 무한한 힘을 경험하였기에 자비를 베풀려는 끝없는 열망에서 시작"(복음의 기쁨 24)됩니다. 모두 기름부은 자가 되도록 선포하고, 선포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읍시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초대하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선교에서 체험합니다. "모든 민족과 사람들에게 가라"(마태 28,19)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초대의 만남입니다. 가서 전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부르심으로 새로워지고 현실화됩니다. 가서 함께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에게 파견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천년전에 하셨듯 우리도 모두에게 그리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이는 되고 어떤이는 안 되며, 누가 가치있고 누가 복음을 받아서는 안 되는지 선별된 목록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반겨주십니다. 고통과 배고픔과 아픔과 죄의 모습을, 상처받고 목마르고 피곤한 모습을, 의혹과 자비의 모습을 반겨주십니다. 채색되고 꾸며지고 위선된 모습과는 동떨어진 만난 모습 그대로 안아주십니다. 삶은 자주 맥이 풀리고, 추하고 망가진 모습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모든 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이에게 가서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원하는 삶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가서 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교차로로 가서 두려움없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통과 실패의 무게를 지고 엉망이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이라는 기름으로 그들을 선택하여 기름부으신 아버지의 엄청나심을 선포하십시오.  실수와 거짓된 속임수와 실패는 한사람의 삶에 궁극의 약속이 될 수 없습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회복시킬 기름을 가지고 가십시오. 선교는 완벽하게 준비된 프로젝트나 잘 짜여지고 계획된 매뉴얼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선교는 언제나 갈망하고 치유되고 찾았고 용서되었음을 느낀 삶에서 시작됩니다. 선교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성유를 체험하고 다시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인 교회는  갈등과 불의와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의 진흙탕길을 건너가 그들의 자손들과 형제들을 만날 줄 압니다. 하느님의 충직한 거룩한 백성들은 실수를 겁내지 않습니다, 구속과 특권 계층화와 자신의 안위만을 고집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포기를 하게 만드는 여러 형태의 원인들로부터 멀어질 줄 압니다.

그렇기에 “이제 출발합시다.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합시다”(복음의 기쁨 49) 하느님의 백성은 참여할 줄 압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제자들도 무릎을 꿇어 발을 씻어주도록 이끄십니다(복음의 기쁨 24 참조)

우리는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여러분들이 여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삶은 줌으로써 성장하고 고립되고 편안해짐으로써 약해집니다"(아빠레시다 문헌 360). 우리는 ‘거짓 안도감을 주는 조직들 안에… 문 밖에서 수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을때 우리를 안심시키는 습관들 안에 갇혀버리는 것’에 매몰되기를 거부하고 나아갈 줄 아는 대담한 선교사들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기쁜소식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새롭고 좋은 소식이 되도록 했던 증거자들이 이어준 전통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복음의 기쁨을 증언할 줄 알았던 증거자들 중 한명을 기억합니다. 후니페로 세라 수사님. ‘나아가는 교회’를 사실 줄 알았던 분이십니다. 이 교회는 밖으로 나아가 하느님의 화해의 온기를 전할 줄 아는 길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땅과 관습을 떠나올 줄 알았고, 새로운 길을 열 마음이 있었으며 새롭게 만나는 이들의 관습과 독특함을 존중하며 만났습니다. 그들의 형제가 되어가면서 그들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삶을 만나고 동행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후니페로는 원주민의 존엄성을 지키고 억압받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유발시켰던 억압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에게 그 길을 걸어가 삶을 구체화하도록 만든 글귀가 있습니다. 그는 그 말을 할 줄 알았고 말한 대로 살 줄 알았습니다. ‘언제나 앞으로’. 이것이 후니페로가 마음이 굳어버리지 않고 복음의 기쁨을 사는 방법을 만나도록 해 준 말입니다. 주님이 기다리시기에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형제들이 기다리기에 언제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언제나 남아있는 삶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어제의 그처럼 오늘 우리도 말합시다. ‘언제나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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