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사회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 오전 바오로 6세 홀에서 교황은 조부모들의 축제일을 맞아 다음과 같은 연설을 남겼다.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부모님들의 축제를 기회로 성찰과 기도의 이 날에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연합회들의 대표들에 의해서 시작된 이 날에 인사의 말씀을 해주신 대표와 여러분 모두에게 뜨거운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만남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가졌던 모든 분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또한 동시에 저는 연세 드신 모든 분들, 아프거나 홀로 있거나 그분들과 가까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집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으나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일치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연세 드신 분들을 사랑과 감사, 깊은 존경심으로 바라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사회의 본질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들어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노인들은 사회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국민의 뿌리와 기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존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경험은 희망과 책임성을 갖고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서 간과할 수 없는 값진 보물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성숙과 지혜는 지난 세월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그것들은 젊은이들을 도와줄 수 있고 성숙과 미래를 행한 열려진 길을 걷도록 도와주면서 그들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인들은 어려운 시련의 순간에서도 보다 나은 미래와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계속 가져다주는 나무들과 같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면서 그들은 가치 있는 사회를 위해서 그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건설하는데 원천적인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웃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도움을 주도록 노인들에게 허락하신 재능들과 시간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헌신하는 노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본당들에서 참으로 값진 봉사를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주님의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데 헌신하고 어떤 분들은 교리 교사, 전례 봉사자, 애덕 활동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분위기에서 그분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손녀들을 돌보고 있고 그들에게 인생의 경험과 민족과 공동체의 영정 문화적 가치들을 단순하게 전달하고 있습니까! 극심한 종교 박해를 겪은 나라들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신앙을 전달한 분들은 바로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이들을 고통스러운 박해 속에서 비밀리에 세례를 받도록 인도했던 것입니다.

힘과 드러내는 것이 신격화된 오늘날의 세상에서 여러분은 참으로 귀중한 가치들을 증거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가치들은 항상 소중한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 보증되고 모든 인간 존재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3세대에 속하는 여러분, 아니 저도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생명의 문화를 증진하도록 불렸습니다. 우리는 존재의 모든 시기는 비록 약함으로 누벼져 있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선물이고 나름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한계들 속에서도 이웃의 선익을 위해 계속 헌신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 많은 분들은 고독과 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노인들에 대한 매일을 봉사에 헌신하면서 그들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며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봉사하는 분들과 기구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곳들은 인간애가 넘치는 장소가 되도록 불리웠고 그들에 대한 사랑러운 주의를 지니도록 불렸습니다. 그리고 더 허약한 분들이 있는 곳들이 외면당하거나 잊히지 않고 나이 든 형제와 자매들처럼 그들을 기억하고 보살펴 주면서 더 많은 방문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렇게 공동체의 뿌리이고 공동체에 많은 것을 준 분들에 대해서 감사를 표현합니다.

많은 사회단체들과 기구들이 노인들의 능력을 더 잘 표현하도록 도와줄 수 있으며 특히 인간의 존엄성은 항상 존중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되도록 그들의 활발한 참여을 용이하게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을 비생산적인 존재들로 여기면서 주변으로 몰아내는 이 해악적인 문화 풍조와 대결해야 합니다. 이 해악적인 문화 풍조와 대결해야 합니다. 이런 풍조는 나쁜 것입니다. 공적인 책임을 맡은 분들, 문화적, 교육적, 종교적인 책임을 맡은 분들, 그리고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분들은 보다 수용적이고 포함시키려는 사회 건설을 위해 불렸습니다. 제 할머니들 중에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가정에 홀로 된 할아버지가 살았는데 아프기 시작했고 결국 병들고 말았습니다…. 식탁에서 잘 먹지 못했고 음식을 흘리곤 했어요. 어느날 그 집의 가장이 할아버지가 더 이상 식탁에서 함께 그들과 식사를 하지 못하게 결정해버렸습니다. 부엌에서 그 할아버지가 혼자서 먹고 사용할 작은 탁상을 하나 마련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할아버지 없이 그 가족은 식사를 했습니다. 며칠 후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작은 아이들 중에 하나가 못과 나무, 망치를 갖고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너 뭐하는 거야? 아이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탁자를 만들고 있어. 왜 만들지? 아빠가 늙으면 이렇게 거기서 먹을 수 있게 말이야”. 아이들은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과 아주 가까이 지냅니다.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이 인생과 태도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해요. 이런 것이 바로 나쁜 풍조입니다. ‘늙었으니까 밖으로 나가라’. 당신은 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에게 말해 줄 것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역사, 문화, 인생, 가치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나쁜 풍조의 문화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항상 받아들여서 수용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대들 간의 연결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민족의 미래는 젊은이와 노인들이 만나는 것을 요구합니다. 젊은이들은 걸어가고 있는 민족의 생명력이며 노인들은 기억과 지혜를 통해서 이 생명력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손주, 손녀들과 대화하십시오. 이야기 하십시오. 그들이 여러분에게 질문하도록 두십시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고 다른 것들을 하고 다른 음악들을 즐깁니다. 그러나 노인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계속하십시오. 지혜를 주십시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읽으면 저는 즐겁습니다. 성전에 갈 때 아기 예수님은 40일 정도 지났으니까요. 거기서 두 노인을 만납니다. 이 노인들은 백성의 지혜였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이 아기와 함께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예수님을 맞이 한 것은 사제가 아니라 노인들이었습니다. 이것 다음에 사제와 만납니다. 노인들. 루카 복음의 이 부분을 읽어 보십시오. 굉장히 좋습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여러분이 사랑과 헌신, 지혜를 통해서 보여준 모범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이 가치들을 힘차게 계속 증거해 나가십시오. 여러분의 미소와 여러분의 반짝이는 눈빛이 사회에 넘쳐흐르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회가 그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저를 위한 기도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이제 여러분과 여러분의 결심, 선을 위한 계획에 대해서 주님의 축복을 빌어드리겠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할머니, 안나 성녀에게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할머니 안나 성녀에게 침묵 속에서 잠시 기도합시다. 성녀 안나께서 우리가 착하고 지혜로운 노인들이 되게 가르쳐주시길 우리 각 자 기도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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