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의 가톨릭교회는 거의 60년 동안 사제가 없는 상태에서 생활하였고 그 어려운 시기에 정교회 신자들의 도움은 교회 일치를 위한 커다란 열매를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황,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사목방문 시작

오늘 교황은  조지아 공화국을 떠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을 방문한다. 아제르바이잔은 메소포타미아, 이란, 이라크와 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카스피해와 면하고 있고 북쪽은 러시아의 다게스탄 자치 공화국과 서쪽으로는 아르메니아, 남쪽으로는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국민의 88%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가톨릭 신자는 0,01%의 소수를 차지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기원후 7세기부터 아랍의 지배를 받게 되어 이슬람화되었으며 이란 왕조와 이라크 왕조로 구분되어 존속하다  16세기 부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18세기부터 러시아의 압력을 받기 시작하여 그 동부는 페르시아에 그 서부지역은 러시아에, 그다음은 소련 연방에 귀속된다.  1991년 8월 30일 독립을 선언한 아제르바이잔은 2001년부터 유럽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다. 1988년 나고르노와 카라바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삼만 명의 사망자가 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었으며 이 분쟁은 1994년에 이루어진 휴전으로 중단되었었으나 2016년 4월 2일 돌연히 다시 발발하여 110명의 사망자를 냈고 러시아와 미국의 중재를 통해서 2016년 5월  6일에 새로운 휴전 상태에  들어가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아제르바이잔에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인물은 바로 인도에서 돌아온 바르톨로메오 사도라고 한다. 바르톨로메오 사도의 업적은  아제르바이잔에 최초의 성당을 건립한 것이고 그 잔해가 지금도 키쉬  마을에 남아 있다. 그 후에도 교회의 많은 수도회들이 이곳에 들어와 전교하였으나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면서 그들이 진행하던 활동들이 중단되고 정교회의 영향이 커지게 된다.  그러나 볼쉐비키 혁명이 발생한 1917년부터 1991년 독립하기까지 사제가 살해당하고 교회가 파괴되는 등의 고난을 겪는다. 아제르바이잔의 가톨릭교회는  거의  60년  동안 사제가 없는 상태에서 생활하였고 그 어려운 시기에 정교회 신자들의 도움은 교회 일치를 위한 커다란 열매를 증거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가톨릭교회는 극소수에 불과한  3-4000명 정도이며  7명의 살레시오 수도회 사제들이 바쿠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유일한 본당)에서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  1991년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아제르바이잔에는 가톨릭 신자가   30여 명에 불과했으며 60년 만에 1997년 폴란드 출신 제르시 필루스 신부가 파견되어 사목을 재개하였으며  1998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 맡겨져서 라틴 전례를  위한 카프카즈 직할 서리구(Administratio Apostolica)의 관할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에 들어서 아제르바이잔의 가톨릭교회는 카프카즈 직할 서리구 관할에서 전교자치구로서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설정되고 2002년에 슬로바키아의 살레시오 수도회 사제들에게 사목이 위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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