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독일의 뷰르츠부륵에서 엥겔마 운차이틱 신부의 시복식이 거행된다.


안젤로 아마토, 9월 24일 독일의 뷰르츠부륵에서 엥겔마 운차이틱 신부의 시복식이 주례

 

9월 24일 독일의 뷰르츠부륵에서 엥겔마 운차이틱 신부의 시복식이 거행된다. 다음은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의 인터뷰 내용이다.

질문-1945년 3월에 다하우에서 순교한 엥겔마 운차이틱 사제는 어떤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오는 24일 뷰르츠부륵에서 시복이 되는되요?

대답-독일 출신인 이 새로운 복자는 마리안힐 선교 사제회 소속이었습니다. 운자이틱 신부는 다하우에 있는 악명 높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순교할 때 34살이었습니다.

질문-이 사제는 왜 체포되어 감금되었습니까?

대답-이분은 나치는 복음을 거부하고 백성을 타락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으로 그분은 박해를 당하고 린츠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고 그 다음 조작된 재판 후에 바이에른 주에 있는 다하우로 이송됩니다. 그 때는 1941년 이었고 수감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애덕의 행위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다하우의 천사라는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질문-오늘날 이 순교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대답-운차이틱 신부는 나치의 잔인하고 참혹한 어둠의 시기에 진정한 인류애를 위한 여명을 열었던 분입니다. 이분은 인간의 마음에서 그 누구도 선함을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분의 순교는 우리에게 신앙, 애덕, 굳건함이라는 세가지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운차이틱 신부가 살았던 시절과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는 차별당하고 박해받고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단지 비신자들의 지역에서가 아니라 우리 유럽에서도  그리스도교 문화에 대한 그분의 유산을 자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운차이틱 신부에게 있어서 신앙은 최고의 선이었고 가장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그분은 감옥에서도 항상 기도와 기쁨 속에 하느님과 일치한 가운데  이웃을 항상 사랑하고 돕고 위로하려고 자신을 내어 놓는 삶을 사셨습니다. 미사, 성체 조배, 묵주기도는 힘겨운 날을 위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질문- 그분의 애덕은 어떠했습니까?

대답- 복자 엥겔마는 완전한 애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자기처럼 고통 당하고 있는 다른 이들, 그리고 감옥의 비참함을 겪는 사람들을 자비와 애덕으로 대했던 분입니다. 감옥에 갇혔던 러시아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신앙을 다시 불태우기 위해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선으로 가득한 존재는 절망에 빠져있고 두려움에 가득찬 수감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중환자들을 어머니와 같이 돌보아 주면서 죽는 순간까지 함께 했었습니다. 그 사제와 함께 죽음은 영원으로 건너가는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지녔던 애덕의 가장 커다란 행위는 다하우에 창궐했던 열병에 걸린 환자들을 자발적으로 돌보다가 감염되어 적당한 도움도 받지 못하다고 죽었던 것입니다.

질문- 그분의 굳건함은 어떠했습니까?

대답- 다하우에서 비참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운차이틱 신부는 인내와 명랑함을 유지하면서 감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처했던 상황을 그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기 위한 특권이었고 영광된 상태라고 여겼습니다. 그분의 굳건함은 절망의 상황을 계속 견디어 낼 수 있는 숨결을 모든 이에게 전달했으며 경이로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발링 신부는 그분에 대해서 ‘사랑이 인격화된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분을 애덕의 순교자 독일인들의 막시밀리아 콜베 신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운차이틱 신부의 순교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복자엥겔마 운차이틱 사제는 독일 국민에게 작은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에 충실하기 위해서 박해를 받고 죽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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