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0일 프란치스코 성인의 고향인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열린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의 날’ 행사(주관, 성 에지디오 공동체)에 참석하고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함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대화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하자고 전했으며 각국의 종교지도자들도 평화를 위한 의지를 표명하고 다함께 서명하였다. 

이하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

주교님들과 각 교회의 대표자 분들,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다양한 종교 공동체 여러분,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애정과 존경을 담아 여러분께 인사드리며 참석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평화를 찾고자 아시시로 순례를 왔습니다. 평화를 청하는 마음과 더불어 많은 민족과 사람들의 고뇌를 하느님께 드립니다. 우리는 평화에 목마르며 평화의 증인이 되고 싶고 평화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우리는 이에 응답하여 그분의 도움으로 매일 평화를 받아들이고 건설해 가야 합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마태 5.9) 복된 이 자리에 오기 위하여 먼 길을 오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하기 위한 만남을 하고자 길을 떠나왔습니다. 단순한 육체적인 활동 뿐만 아니라 영성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닫힌 마음을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열기 위한 실질적이며 영성적인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시대의 심각한 질병인 무관심과 마주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무감각해지면서 우리를 마비시켜버리는 바이러스입니다. 종교의 한 가운데를 파고드는 질병이며 무관심이라는 신흥종교의 슬픈 이교도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무관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평화에 타는듯한 목마름을 느낍니다. 자주 잊어버리지만 많은 나라들이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고통과 가난이 생겨납니다. 친애하는 형제이며 동방교회의 총대주교이신 바르톨로메 총대주교님과 함께 방문한 레스보스 섬에서 전쟁의 고통을 겪는 난민들과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고뇌를 제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가정들과 폭력만을 경험한 어린이들과 고향을 떠나야 했던 노인들을 떠올립니다. 그들 모두 평화에 대한 커다란 목마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잊혀져서는 안되겠습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목소리를 지니지 못하는 이들 그리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들을 위한 목소리가 되어 줍시다. 그들은 전쟁에는 미래가 없으며 살상용 무기는 삶의 기쁨을 파괴한다는 것을 권력자들보다 더 잘 압니다.     

우리들에게는 무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기도가 지니는 부드러운 힘을 믿습니다. 지금의 만남을 통해 평화에의 갈망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원으로 변화하여 전쟁과 테러와 폭력이 사라지도록 할 것입니다.  아시시에서 드리는 평화에의 기원은 단순히 전쟁을 반대하는 시위가 아니며 ‘협상의 결과나 정치적 약속 혹은 경제적 이해가 아닙니다. 기도의 결과물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1986.10.27) 일치의 근원이시며 인간이 갈망하는 평화의 맑은 물이신 하느님을 찾습니다. 평화는 오만과  소수만을 위한 이익을 갈구하는 사막이나 무기 판매와 이익만을 추구하는 메마른 땅에서는 피어나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종교적 전통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다양함이 갈등이나 논쟁, 냉전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슬프게 일어났던 서로를 반대하는 기도를 오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혼합주의나 상대주의를 벗어나 서로 함께, 서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장소에서 ‘역사에서 그 이전에 없었던 진실된 종교적 행위들의 본질적인 연계가 이루어지고, 평화의 위대함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1986.10.27)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과 평화의 성인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살아있는 기억이 존재하는 아시시에서 시작된 길을 30년간 이어 왔습니다. ‘다시 한번 더 이 자리에 모여, 폭력을 위해 종교의 이름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종교의 깊고 진정한 영감으로 선포하였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 2001.1.24) 어떤 형태의 폭력도 진정한 종교의 본성을 대변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파괴하며 모습을 일그러트립니다.(베네딕도 16세, 2011.10.27) 하느님의 이름을 악용하여 폭력을 정당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언급해야 합니다. 오직 전쟁이 아닌 평화만이 성스럽습니다.

우리는 오늘 평화의 거룩한 선물을 간청하였습니다. 마음을 움직여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고, 민족들간에 평화를 불러오며, 모두의 고향인 자연을 지키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와 헌신은 갈등의 논리에 갇혀 있지 않도록 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와 화를 거부하도록 확실히 도와 줍니다. 기도와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는 환상이 아닌 진정한 평화를 찾게 해 줍니다. 어려움을 피하고 자신의 이익과 상반되면 다른 곳을 바라보려는 사람의 무사함이 아닙니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면 상관않는 시티컬함도 아닙니다. 타인의 필요를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 하고, 인간의 필요에 눈을 뜨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가상세계에 맞추어 놓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길은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 첫번째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갈등에 맞서며 안으로부터의 치유를 합니다. 선함의 길을 따르며 악의 지름길로 빠져서도 안됩니다. 하느님의 도움과 선한 의지로 평화를 향한 길을 인내로 가야 합니다.        

희망의 실인 평화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간단하면서도 동시에 어려운 말입니다. 평화는 회개와 기도의 열매이며 안으로부터 태어난 용서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평화는 받아들임을 의미하며 대화를 할 태세가 되어 있음이요 갇혀있음을 넘어서는 것으로 전략적 안전이 아닌 비어있는 자리에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평화는 협력을 말합니다. 생생하며 확실한 타인과의 나눔이며 문제거리가 아닌 선물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형제입니다. 평화는 교육을 의미합니다. 일치를 향한 매일의 가르침을 위한 부르심이며 만남의 문화입니다. 폭력과 경직됨, 하느님의 이름과 사람의 존엄에 반대되는 유혹으로부터 양심을 정화시키는 문화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는 평화로 일치되었으며 형제적인 세상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사람들이, 특히 갈등이 있는 곳에서 서로 만나 함께 일치를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불신과 근본주의와 미움이라는 무거운 짐에서 자유로워지도록 불리워진 사람들입니다. 신앙인들이 평화의 장인들이 되며 형제들을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청합니다. 종교 지도자들로서 우리들은 평화를 창조하기 위한 중계자로서 대화의 견고한 다리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책임을 맡은 높은 분들과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도 평화의 길을 찾고 따르며 소수의 이익이나 순간의 이익을 넘어서 저 멀리 바라보는데 지치지 말 것을 청합니다. 하느님께서 마음을 향해 부르시는 소리와 가난한 이들의 평화를 위한 외침과 젊은 이들의 희망을 묵인하지 맙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30년 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는 전문가나 지혜로운 이 혹은 책략가에게만이 아닌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평화는 모두에게 주어진 책임입니다.’(연설, 1986.10.27)  이 책임을 받아들이며 우리 모두는 함께 하느님께서 원하시며 인류가 갈망하는 평화를 건설하는데에 네라고 응답합시다.








All the contents on this site are copyrigh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