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겸손하신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현존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월 28일 폴란드 야스나고라 성모 성지에서 거행된 폴란드 첫 세례 105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였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모여 7킬로미터에 이르는 성지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교황을 환영하였다. 제대에서는 검은 성모라 불리는 야스나 고라의 성모자 이콘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교황은 강론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현존하고 계심을 강조하였다.

이하 교황의 강론 전문

전례 독서에서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며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하느님의 공통된 주제가 드러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위대하신 계획을 말해줍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갈라4.4) 역사는 때가 차게 되는 순간이 될 때,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실 때, 인간들에게는 그리 좋지 않거나 평화나 안정의 시기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황금 시대’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오시게 될 하느님께 걸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요한1.11) 때가 차는 것은 은총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지막 시간을 그분의 자비로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완전하신 사랑으로 때가 찬 순간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역사의 순간으로 오셨던 모습은 특별히 놀랍습니다. 그분은 ‘여자의 몸에서 나셨습니다’. 의기양양한 입장이나 전능하신 분의 탄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처럼 드러내시지도 않고, 성서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땅을 적시거나(이사55.11 참조), 가장 작은 겨자 씨앗이 싹을 틔우고 성장하는(마르4.31-32 참조)  모습으로 표현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아이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우리의 기대나 요구와 반대로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아닌’(루카17.20) 오히려 겸손과 미약한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역사를 섬세하게 관통하는 하느님의 뜻을 드러냅니다. 때가 찬 순간으로부터 삼일째 되는 날의 예수님의 활동(요한2.1 참조) 그리고 구원의 ‘때’의 선포(4절 참조) 입니다. 짦은 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미약한 중에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하여 갈릴래아 카나에서 ‘처음으로 표징을 일이키셨습니다’(11절)

군중들 앞에서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거나 로마의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처럼 관심을 끌만한 정치적 사안과 관련된 말씀도 없으셨습니다. 대신 작은 마을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났고 젊고 평범한 가족의 결혼식에 기쁨을 가져왔습니다. 동시에 술로 변화된 물은 혼인잔치에서 우리와 함께 자리하시며 우리와 일치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주는 위대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거리를 두지 않으시고 우리 가까이 현존하심을 말해줍니다.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리거나 권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시면서 그분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분꼐서는 더욱 큰 것을 원하는 우리들과 달리 소소한 것을 돌보시기를 더 좋아하십니다. 권력과 위대함과 드러남에 이끌리는 것은 인간의 비극입니다. 모든 곳에 끼고 싶어하도록 만드는 큰 유혹입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놓고, 거리를 두지 않으며 소소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일상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성스러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미천한 모습이 되셨고, 가까이에 현존하심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작은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마태11.29)하시며 미소한 것들을 사랑하시고 하느님의 나라(마태11.25)를 드러내 보이는 분이십니다. 그들을 아끼시며 굽어보십니다.(이사66.2 참조) 그들이 세상에 속한 ‘욕망의 삶’(요한1서 2.16)과는 반대되기에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미천한 이들을 자유로 이끌 겸손한 사랑으로 말합니다. 그렇기에 그분을 대변해 줄 단순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이름과 마음의 비밀을 믿고 드러내십니다. 우리 마음은 순교자들의 빛나는 복음의 무기력해 보이는 위대한 힘이나 평범하지만 주님의 사랑과 위대하심을 증거하는 이들과 같은 여러분들의 수많은 아들 딸들에게 향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나 파우스티나 성녀처럼 하느님을 자비를 찾는 이들 말입니다. 이러한 그분 사랑의 ‘경로’를 통해 모든 교회와 인류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을 주십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과 함께 하는 여러분들의 첫번째 세례 기념은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가까이에 계시며 그분의 왕국도 가까이 왔습니다.(마르1.15 참조)주님께서는 권력과 독재와 같은 두려움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늘나라 왕좌에 머무르거나 역사책의 한 부분으로 남기를 원치 않으시며 오히려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와 함께 걷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가득 찬 천년이라는 기간은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동행해 주시며 수많은 상황에서 손을 잡고 함께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상시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듣고, 참여하며 이웃이 되어 사람들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눔으로서 복음이 더욱 항구적으로 퍼져나가고 열매 맺도록 말입니다.  선함이 우리의 삶을 투명하게 비추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서는 현존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활동하심은 늘 현실적이며 확고하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장인과 같고 뛰놀게 합니다.(잠언8.30 참조)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시고 율법 아래 놓이셨으며(갈라4.4 참조) 친구가 되어 함께 즐기십니다. 영원하신 분께서 실질적인 상황에서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시면서 소통하십니다. 복음과 십자가와 교회의 충실성을 빚으시면서, 고유한 역사안에서 가정에서 가정으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감사를 드려야 할 모든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에게서 진실한 신앙으로 이어졌습니다. 특별히 여러분들께서는 자신의 손으로 모든 이들의 자애로우신 어머니, 제가 이곳으로 순례를 와서 경애하며 시편에서 ‘겨례의 자랑’(유딧15.9)이라 칭하신 그분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이자리에 모이도록 해주신 마리아를 바라봅시다. 그분안에서 우리는 주님을 향한 완전한 일치를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역사에서 마리아의 실이 함께 있습니다. 인간적인 영광이나 때가 이르도록 하는 우리의 역할이 존재했다면 바로 마리아이십니다. 마리아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으로 하느님의 거울로 선택한 공간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내려오셔서 우리 곁에 있도록 해주시는 계단이십니다. 그분은 때가 되었음에 대한 명확한 표징이십니다.   

성모님의 생애는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시는’(루카1.48,52)  하느님께서 사랑하셨던 ‘작음’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찬가로서 불러지고 선포되었듯 동정녀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성모님께 다가서는 여러분들을 위해 국가의 영적인 수도인 이곳에서 성모님께서 계속 길을 보여주시길 청합니다. 그분께서 여러분들의 삶을 하느님 복음의 겸손함과 단순성으로 직조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카나에서, 이곳 야스나고라처럼 마리아는 우리 가까이 계시며 온전한 삶을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당신의 현존과 위로와 성급한 판단과 공동체에서의 불평을 피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가정의 어머니로서 우리가 함께 있기를 원하십니다. 일치를 통해 여러분들의 여정은 여러 차례의 힘든 경험을 극복해내고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견고히 서 계시며 사도들과 함께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기를 지속하신 어머니께서 모든 과거의 잘못과 상처를 뒤로하고, 포기하거나 정복하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고, 모두와의 우애를 건설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나에서 우리의 어머니는 현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가진 문제를 마음과 실천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어려운 순간을 알아차리셨고 조용하고 효율적이며 확고하게 해결하셨습니다.  방해를 하거나 오만한 모습이 아닌 어머니와 일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의 섬세함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창조적인 도움의 손길을 따를 수 있도록 그리고 우선이나 차별을 두지않고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의 기쁨이신 마리아께서 평화를 주시고 죄와 역사의 혼란에 흔들리지 않으며 풍성한 성령님의 강림과 더불어 우리가 선하고 충직한 봉사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성모님의 간구를 통해 우리에게도 때가 차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의 변화를 역사의 기념일로 여긴다면 그 변화는 미소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내적 여정을 통해 마음의 과월절을 통해 마리아를 통해 육화되신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작은 일들을 하고 단순하고 열린 마음으로 타인과 손을 맞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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