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사제들의 희년 세번째 강의. 그리스도의 향기와 자비의 빛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일 성바오로 대성전에서 사제들의 희년 세번째 영성강의를 하였다. ‘그리스도의 향기와 자비의 빛’을 주제로 자비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고해사제로의 자세 및 자비의 실천에 관하여 언급하며 아니마 크리스티(Anima Christi, 그리스도의 영혼) 기도로 강의를 마무리 하였다.(관련기사, ‘교황. 사제들의 희년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자비의 행위만큼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교황의 사제들의 희년 두번째 강의, 자비의 그릇’)

교황은 사제의 카리스마를 통해 자비의 실천을 생각해 보자고 권고하였다. 자비의 일은 영적인 감각과 가깝게 연결되어 있고, 기도 중에 복음을 느끼고 맛볼 은총을 청함으로서 삶을 더욱 예민하게 만든다. 자비의 일은 특정 활동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일깨우는 것이다.

가톨릭 교리서에서의 자비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며 리마의 로사 성녀의 말을 인용하였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위해 헌신할 때 그리스도의 항기가 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언제나 교회를 증명해준다. 비참함에 짓눌린 사람들은 ‘교회의 우선적 사랑을 받는’ 대상이 된다. 교회는 초기부터 많은 지체들의 과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하고, 해방시키려고 노력해 왔다.(가톨릭 교리서 2448항) 교회는 언제나 잘못과 실수를 범해 왔지만, 가난한 이들과 자비의 활동을 할 때에는 언제나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랐다.

신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돌보며 인내심으로 가르치고 용서해주는 사제를 존경한다. 신자들은 사제의 많은 잘못을 용서하지만 돈과 관련된 문제는 다르다. 돈이 자비를 잃도록 만드는 것을 신자들이 알기 때문이다. 죄는 사제를 권위적으로 만들거나 용병처럼 만들어 성직을 위태롭게 한다.

자비는 하느님 백성의 모든 삶을 성사로 만드는 길이다. 자비로움은 삶의 방식 중 하나가 아닌, 방식 그 자체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구호와 필요를 미리 감지하고 활동하는 것은 아버지의 시선을 의미한다. 자비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제의 시선은 신학교에서부터 익혀 모든 사목활동에서 드러나야 한다. 또한 오늘날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비의 활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표징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자비의 활동은 하느님의 축복과 사람들의 도움과 협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자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교황은 요한복음(8장 3-11절)의 간음한 여자에 대한 예수님의 자비를 언급하였다. 예수님은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라고 하시며 당신의 팔을 내밀어 여자를 일으켜 세우시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마음이 바뀌도록 만드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돌아설 수 있는 시간도 주셨다. 더이상 아무도 남지 않자 예수님께서는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라고 언급하신다.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것이 자비의 감성이다. 자비로 과거를 바라보고 미래의 용기를 주는 것이다. 마리아가 은총에 ‘네’라고 답한 것처럼, 자유로워지기 위해 죄에 ‘아니요’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면 단죄하기 위하여 접근하였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도록 해주신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을 각자의 근원적 삶에서 들어야 한다.

교황은 또한 고해실이 진리로서 자유를 주는 만남이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해사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로서의 사목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교리서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고해사제는 하느님의 용서를 주는 주인이 아닌 봉사자(1466항)임을 밝히고 있다. 고해사제는 만남의 표징이며 도구이기에 표징은 간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한다. 또한 하느님 자비를 만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야 하며 사제는 이 만남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제는 아버지나, 목자나 사마리아인이 아닌 죄인이지만 교회를 만드시고, 일치를 이루시며, 만남으로 초대하시는 성령님 신비의 한 부분이다. 현상 자체가 아닌 이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표징이며 도구 즉 중개자인 것이다. 또한 사제는 사람들이 언제나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모든 이들은 누가 좋은 고해사제인지 안다. 사람들이 찾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고해실을 찾을 땐 이미 회개하고 있는 것이며 변화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고해는 또한 통합적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제대로 청하지 않았어도 그들의 처지와 문제를 깊이 들어주셨고, 치유해 주셨다.

고해사제는 사람들이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딛어 회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권력자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비는 사제가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을 방지해준다. 예수님의 법은 우리가 판단한대로 판단받는다는 것이다. 타인을 존엄으로 대하며, 하느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도구로써 쓰고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고해실에서 호기심을 드러내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에게서 우리가 받고 있지만 또한 내주어야 한다. 자비의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말씀은 치유와 돌봄과 같은 표징으로 드러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활동으로 각자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 보이셨다.

자비의 활동을 개인적이며 특별한 동기가 필요한 것처럼 여기기 쉽다. 그러나 자비의 활동은 포괄적인 것이며 대상은 인간의 전반적인 삶을 향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표징과 도구가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며 행위 뿐만이 아닌 자비의 문화와 구조적인 계획을 통해 실천해야 한다. 신자들은 자비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한다. 성당이나 순례에서의 참여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한 다양한 시도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감사하며 지원해야 한다.

사제로서, 착한 목자께,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같추어야 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신앙과 가난함으로 이끌어 주시는 은총을 청하며 아니마 크리스티 기도를 함께 할 것을 참석한 사제와 신학생들에게 청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성강의를 마치며 함께 바친 기도

아니마 크리스티(Anima Christi)

그리스도의 마음은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구원하소서.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취하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나온 물은 저를 씻어 주소서.
그리스도의 수난은 저를 위로하소서.
좋으신 예수님, 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주님의 상처 속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제가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사악한 원수에게서 저를 지켜 주소서.
죽을 때에 저를 불러 주소서.
저를 부르시어 성인들과 함께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로마 미사 경본', '미사 뒤에 바치는 감사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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