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오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피격


35년 전 오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피격

35년 전, 1981년 5월 13일 오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대광장에서 알리 아카가 쏜 두 발의 총을 맞았었다. 그날은 오늘과 같이 파티마 성모님 축일이었다. 교황 보이티와는 이것을 성 마리아께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손길이었다. 교황의 흉부를 관통하여 그 목숨을 앗아갈 뻔한 총알은 현재 파티마에 있는 성모상 왕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그 때는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  파티마 성모님 축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반 알현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지붕이 없는 자동차에 서서 순례객들을 강복하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교황과 신자들이 다정다감한 손짓을 주고받는 만남의 시간이었다. 손을 펼치고 웃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스럽게 아기를 팔에 안았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 있었는데 조금 후 교황은 교황청 가정평의회 신설을 알리는 중요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 발표는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마치 막 발생할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을 예견하는 것과 같았다.

17:17이었다. 반복되는 굉음이 들렸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총성이었다. 교황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개인 비서 스타니슬라오 즈비쉬가 부둥켜 감싸 안았다.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우는 사람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두 손에 묵주를 돌리며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날 알현을 취재하고 있던 기자 베네데토 나르다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군중은 모두 서 있었어요.. 그들이 거기에서 그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입에 담을 수가 업습니다. 모두들 침묵 중에 있었고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분명하게 확실히 총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피격되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 속에 그대로 쓰러져 있는 교황을 보았고 그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바티칸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바티칸에서 최초에 발생했던 테러행위였습니다. 바티칸 시국은 항상 사랑과 화합, 평화의 메시지를 내보내던 곳인데도 테러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 순간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순간이었다. 광장에서는 저격범과 발사된 총알의 숫자에 대해서 상반된 내용의 소식들이 퍼지고 있었다. 특히 카롤 보이티와가 입은 총상의 중대성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구급차의 요란한 소리가 들렸고 바티칸 라디오의 총괄 책임자 로베르토 투치 신부의 확인 사실이 있었고 피격이 있은 조금 후 나르다치 기자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함께 소식을 전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바티칸 라디오 투치 신부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아직 총상의 피해 정도에 대해서 잘 알려진 바가 없다. 17:29에 성 안나 문을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 구급차를 보았다. 사실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구급차에 교황이 계시고 제멜리 병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바티칸에서 제멜리 병원까지는 약 15분 정도 걸린다. 피를 말리는 순간이었다. 교황의 주치의였던 레나토 부죠네티는 기억하기를 구급차에서 교황은 “폴란드 말로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예수님, 나의 어머니’라고 말입니다”. 수술은 매우 어려웠고 장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카롤 보이티와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는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고 특별히 심장을 관통했는지에 대해서 매우 심각한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교황을 수술한 사람은 총알이 정상 궤도에서 빗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아슬 아슬하게 총알이 빗나갔던 것이다. 수술이 진행되던 제멜리 병원 3층은 시간이 멈추어 섰던 것과 같았다. 전 세계의 모든 방송 매체들은 수술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수술… “교황의 수술은 4시간 20분이 걸렸다. 미국 에비씨(ABC)의 생중계 방송은 ‘바티칸 라디오는 교황의 상태가 위중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특히 폴란드의 수많은 신자들은 기도를 하고 있었으며 그 소식에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동시에 이탈리아 경찰은 저격범을 조사했고 그는 터키 출신의 청년 극단 주의자 알리 아카라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생명을 앗아갈 뻔한 저격이 있은 첫 삼종기도에서 그 저격범을 기억하며 말한다. 1981년 5월 17일 교황은  제멜리 병원 병실 자신의 침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의 기도에 깊이 감사를 표하며 모든 이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나를 저격했던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그를 진심으로 용서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여, ‘저는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성모 마리아께 대한 봉헌과 용서.

이 두 측면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삶과 가르침에서 이미 강하게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그 순간부터 이것들은 카롤 보이티가 보여준 모습과 증거를 모두 하나로 묶어준다. 저격을 당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했던 그 용서를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성탄절에 레빕비아에 로마 구치소를 방문하여 ‘저격했던 형제’에게 직접 전달한다. 동정 성모 마리아께 교황은 자신의 마음, 생명, 자기 자신 자체를 드린다. 1982년 5월 13일, 그러니까 피격당한 지 일년 후 교황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에 감사하기 위해 파티마 성모 성지를 방문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신을 고통스런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했던 총알이 빗나가게 했던 것”은 자신을 보호해 주시는 성모 마리아의 손길이었음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마리아여 나의 모든 것(Totus Tuus Maria)”. 교황의 문장에 새겨진 이 문구는 전구기도가 된다. 교황 보이티와는 자신의 이 지상 생활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전한 봉헌을 계속 반복하였다.

“저는 당신께 의탁하면서 다시 한 번 ‘마리아여, 당신은 나의 모든 것, 나의 모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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