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함께 하는 묵주기도, 빛의 신비 (목요일)


교황 프란치스코와 함께 하는 묵주기도, 빛의 신비 (목요일)

빛의 신비 (목요일)

1단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 9-11).

새로운 생명을 사는 것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인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에 잠겼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역사 전체에 있어서 가장 큰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새 생명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악과 죄와 죽음의 힘 속에서 살지 않고 하느님과 형제들과의 친교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물로 다시 태어났고 그리도를 옷 입듯이 입은 우리들이 우리들의 한계와 나약함과 죄들이 있음에도 예수님을 따르면서 교회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세례성사의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께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해서 받은 이 은총을 날마다 보다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참된 자녀들이고  예수님의 참된 형제자매들이며 교회의 참된 일원들을 만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1월 8일 일반 알현).

2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사흘째 되는 날,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요한 2,1-5).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

가정 안에서 맛보게 되는 참된 기쁨은 표상적인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사물들이나 유리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기쁨은 사람들 사이에 깊은 화목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깊은 화목은 마음속에서 모든 이가 느끼는 것이며 그것은 함께 생활하는 아름다움과 인생에 있어서 서로 도와주며 지탱해 주는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기쁨의 깊은 곳에는 하느님의 현존,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이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자비로운 그 하느님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특히 인내하는 사랑이 존재합니다.  인내는 신성한 덕행이며 가정에서 우리가 서로 서로에게 사랑속에서 인내하도록 가르쳐 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이에서 인내심을 가지도록 말입니다. 이것은 인내하는 사랑이라고 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상이함 속에서 조화를 창조하실 줄 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결핍될 때 가정은 화목을 잃게 되고 이기주의가 판을 쳐서 기쁨을 삭혀버리고 맙니다. 이와 반대로 신앙의 기쁨을 사는 가정은 신앙을 기꺼이 전파하면서 땅의 소금과 세상의 빛이 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의 누룩이 됩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10월 27일 강론).

3 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

그 누구도 구원에서 배제하지 않는 하느님

예수님은 당신이 가져다주신 기쁜 소식이 인류의 특정 부류에게 유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전달되어야 할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복음은 그것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 주어진 기쁜 소식이지만  또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사람들과 그것을 추구해서 믿고자 하는 힘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도 하느님의 구원에서 배제되지 않았다는 것과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다가가시기 위해 주변에 머물며 가장 낮은 사람들에서부터 출발하신 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느님 나라를 위해 일하러 가도록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신선과 목소리가 우리에게 도달해서 맡기면서 그분을 따라나섭시다!  “복음의 기쁨이 세상 끝까지 도달하고 그 어느 곳도 하느님의 빛이 결핍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1월 26일 삼종 기도).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이 말씀을 하시고 여드레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루카 9,28-29.34-35).

살아계신 예수님

우리는 부활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에게 그 부활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변모, 우리 육신의 변모는  이 지상에서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사 속에서 특별히 성체성사 속에서 준비됩니다. 이 세상의 삶속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양육된 우리는 그분과 같이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해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육신과 함께  부활하셨지만 그것은 이 지상의 생명으로 되돌아온 것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영광스럽게 된 육신으로 변모된 육신의 부활을 맞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이 순간에 살아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분의 부활의 힘은 우리 모두를 부활하도록 하실 것입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13년 12월 4일 일반 알현).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 19-20).

우리를 그리스도와 일치시켜주는 ‘성찬의 식탁’

최후 만찬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행동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무한한 감사의 행위였습니다. 성체성사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그 정점을 이룹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쪼개진 빵이 되시면서 우리 위에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부어주시며 우리 마음과 존재, 형제들과 당신과의 관계를 맺는 방법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체성사에 다가갈 때 보통 우리는 ‘영성체하러 간다’, ‘성체를 모시러 간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성찬례에 참여하는 것은 유일하게  깊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우리를 일치시켜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것은 천상 잔치에서 모든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 보는 그 충만한 일치를 지금부터 맛보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교황 프란치스코, 2014년 2월 5일 일반 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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