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바르디 신부. 바티칸 방송이 소외받는 이들을 향한 마음을 간직하길.


예수회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청 산하 방송 언론 조직의 대대적인 정비작업이 이루어지면서,  2월 29일 바티칸 방송의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난다. 12년간 바티칸 텔레비젼 센터(CTV), 그리고 10년간 바티칸 방송 책임자와 교황청 공보실의 대변인으로 일했다.

자리를 떠나는 롬바르디 신부와  필립파 힛첸 기자가 인터뷰를 하였다.

롬바르디 신부는 바티칸 방송 책임자로 임명되었을 때 자신이 라디오에서의 경험이 없었고,  10년간 일했던 예수회 잡지인 치빌타 카톨리카(Civiltà Cattolica)에서 사용하던 장문의 기사에서 간결하고 요약된 기사로 적응해야만 하였다고 전했다.

바티칸 방송은 자신의 ‘집’이 되어주었고 60개국 이상의 국적을 가진 직원들과 함께 40개 언어권으로 15가지 문자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문화의 풍요로움에 매료되었다고 전했다. 운영비용때문에 이러한 풍요로운 다양성을 축소시킨다면 바티칸 언론이 빈곤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롬바르디 신부는 작년 10월 9일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을 언급하고, 최근 보코하람 테러리스트의 폭력으로 고통받은 나이제리아 북부 지역의 주요언어인 하우사(Hausa)어로 방송을 시작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였다. 하루 30유로의 운영비와 나이제리아 주교회외와 수도자 공동체의 도움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박해받고 가난한 가톨릭인들에게 작은 지원의 살아있는 신호를 보내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85년간의 바티칸 라디오 역사는 청취율을 올리려는 것 보다는 가난한이들과 억압받는 소수민족을 위해 봉사하려는 정신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서 라디오 방송이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송으로 변화해 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라디오 서비스는 지난 십년간 규모가 축소되는 과정에서도 교황청 예식 지원과 통번역 서비스 및 다큐멘타리와 자료 수집에 노력하였다고 하였다.    

롬바르디 신부의 퇴임과 함께, 비오 11세 교황이 라디오를 시작하던 1931년부터 주역으로 일하던 예수회의 시대도 끝나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가 언론과 관련된 업무를 지속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하였으나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한 바티칸 홍보매체는 TV, 신문, 웹과 SNS 통합과정을 거치는 혁신이 이루어지게 된다.  

롬바르디 신부는 바티칸의 언론 혁신에도 소비문화로 인해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이 지속적으로 전해지기를 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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