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얻은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멕시코 남부의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 치아파스지역의 인디오들과 미사를 봉헌하였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전통적인 가치가 오늘날 필요함을 언급하였다.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의 시립 스타디움에서 야외미사로 봉헌되었으며 기도와 독서, 강론 통역이 치아파스의 인디오들의 언어로 이루어졌다. 멕시코 남부는 풍부한 천연자원에도 빈곤과 문맹율이 높은 지역이며 마야문화권의 인디오들이 많이 살고 있다.  

교황은 강론에서 인디오들의 문화가 잘못 이해되어지고 사회로부터 소외를 받아왔음을 언급하고 그들의 문화의 가치가 저급한 것으로 취급받고 권력과 부로 그들을 오염시키고 땅을 빼앗았다고 언급하였으며 각자가 자신의 양심을 들여다보고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 것을 배워햐 한다고 하였다.

교황은 인디오들을 통해 자연과 하모니를 이루는 것과 나눔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인디오들은 치아파스와 과테말라의 마야부족들을 대표하여 자신들을 찾아와 원주민 언어로 미사를 함께 봉헌해준 교황에게 감사를 전하였다. 또한 원주민어로 번역된 성서를 교황에게 선물하였다. 미사에 참석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얻은 교황이라고 연호하였다.

교황은 미사를 마치며 고개숙여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하 교황의 강론

리 스만탈 카흐발티케 토흐 렉(Li smantal Kajvaltike toj lek),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우네.

오늘 우리가 들은 화답송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의 법은 완전합니다.’ 그리고 시편의 저자는 이 법이 보여주는 것을 차례로 알려줍니다. 시편은 이어,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을 깨우치네.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모세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법 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부르심을 받은 그 자유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 입니다.  당신 백성의 걸음을 비춰주며 순례를 동반하는 법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만하라 말씀해 주실 때까지 파라오의 압정과 노예생활로 고통과 학대를 경험했던 민족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더이상은 안된다’로 말씀하십니다. ‘고난을 보았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고통을 알고 있다’(탈출기 3.7 참조)  여기에 우리 주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고통과 박해와 불평등을 겪고있는 당신의 자녀들의 고통 앞에서의 모습입니다. 그분의 말씀, 법은 자유의 상징이 되며 기쁨과 지혜와 빛의 상징이 됩니다. 경험과 현실이 드러나는 이러한 표현들은 먼 시간의 저편 땅에서 태어난 지혜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포폴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새벽의 빛은 모든 부족들이 함께 있을 때 옵니다. 땅의 상처는 빛으로 치유됩니다.(포폴부 33)  백성들에게 다가온 빛은 역사의 어두움에서 갈 길을 여러번 알려주었습니다.

이 표현에  자유로운 삶이 있고, 박해와 구속과 박탈의 땅에서도 약속의 땅을 맛보게 합니다. 인간의 마음과 민족들의 기억에는 형제애로 우월감을 극복하고 연대로 불평등을 극복하고 평화로 폭력이 잦아든 땅에 대한 기억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기억을 공유하는 것만이 아닌 그분 스스로가 이루어내시고 당신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안에서 우리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신 아버지 하느님의 함께함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과 동행하며 지켜주시기 위해 완전한 법이신 당신이 육체를 취하시고, 모습을 취하시고, 역사를 취하셨습니다. 길이 되어 주셨고, 진리가, 생명이 되어주셔서 어둠이 새벽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를 침묵시키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으며 우리의 영혼은 무디게 하고 어떻게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으며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여 우리의 자녀들과 젊은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들 앞에서 자연도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자연이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죄로 상처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구는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2)

우리가 겪고있는 환경의 도전은 인간들에게 그 뿌리가 있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찬미받으소서 14)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환경의 위기 앞에서 더이상 귀머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것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주교들이 아는 것처럼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줄 압니다. ‘나눌줄 아는 인간의 양식과 공동체의 근원이며 제대’(아파레시다 472)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여, 여러차례,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방법으로 여러분은 잘못 이해되고 사회에서 소외되어졌습니다. 어떤이들은 여러분들의 가치와 문화와 전통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른이들은 가난과 돈과 시장의 법으로 여러분을 어지럽게 하고 여러분들을 땅에서 몰아내고 오염시키는 행동들을 저질렀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 모두가 양심을 들여다보고 이렇게 말하는 법을 배울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용서해 주십시오! 그것들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세상은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풍요롭고 다양한 문화들을 소멸시키고 단일화 하려는 세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지혜를 잃어버지리 않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실용주의에 얽매여 있어서 감사의 가치를 다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우리는 저버지리 않으셨으며, 사랑의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찬미받으소서 13)  우리는 당신의 가장 작은 형제들과의 작은 나눔의 행위들 안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합니다. 그분의 수난과 부활의 증인이 되는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운을 냅시다.

리 스만탈 카흐발티케 토흐 렉(Li smantal Kajvaltike toj lek),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를 돋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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