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던 교황님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2014년 8월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 동행하였던 대전교구 유흥식 라자로 주교는 교황이 만나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하였다. 교황방문의 기억이 대전교구민들에게도 은총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교황의 정신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순례길 정비사업 등 다양한 노력들을 개진 중이라고 전하였다.

해미를 순례하던 교황은, 특별히 무명의 순교자들을 생매장 시켰던 여숫골에서 순교자들이 이름도 남기지 않고 기꺼이 예수님을 증거하며 순교하였다는 사실에 놀라워하였다. 이름조차 없었다는 말을 되내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깊은 기도를 드렸다. 유 주교는 이 모습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는다고 전해주었다.

한국에서도 대전교구가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태어난 곳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유흥식 주교는 순교자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지난 11월 11일 있었던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역사 강연회에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아래는 프란치스코 교황 한국방문 1년을 기념하여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있었던 순교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의 역사 강연에서 기조연설을 하였던 유흥식 주교의 강의록 전문이다.

 

기억과 희망                   

오늘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역사를 지닌 한국천주교회사 세미나 자리에 모였습니다. 선교사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종교적 진리를 갈구하는 지식인들의 노력을 통해 자생적으로 탄생하여 순교의 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교회의 역사에 드러난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의 신비를 되돌아보는 자리입니다. 단순한 회상이 아닙니다. 이 은총에 비추어 현재 한국 교회의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이며, 이 성찰을 통해 한국 교회에 내려주신 은총을 세계 교회와 함께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기억, 반성, 회심 그리고 희망의 여정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기억(회상)

그리스도교회는 순교의 씨앗에서 자라난 교회입니다. 2천여 년의 역사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거한 무수한 순교자들의 피와 인류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진리의 가치를 삶으로 증거한 신앙인들의 기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용하고 삶으로 증거했던 한국 순교자들의 역사는 그리스-로마 문화에 뿌리를 내리던 초기 교회 역사의 재현과 유사합니다. 이는 신앙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 이를 실천하고 증거하는 삶과 죽음에서 하느님의 신비가 드러난 성사적 사건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그 신비를 세 가지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순교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변화와 용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의 삶은 신앙이 전파된 후 도착한 선교사들에게 전율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들을 감동시킨 것은 신앙을 고백하면 양반 신분이 박탈되는 사회에서도 의연히 신앙을 증거하며, 자신의 재산을 나누고 노비를 해방시키는 신앙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의 이러한 선택은 사회변화 이념으로써 신앙을 받아들였다거나 임박한 종말에 대한 강열한 희망이 중추적 동인이 되어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기록을 보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만큼 변화된 삶으로 응답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선택의 용기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신앙으로부터 왔음을 압니다. 이는 현대의 많은 사회 운동과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사회변화추구가 어느 지점에서 다름을 드러내야하는지를 비춰줍니다. 그리스도께서 기도와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우리를 통해 세상의 형제자매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듯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불의에 맞서는 것이 우리의 자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순교는 문화와 전통 안에 담긴 소중한 인간의 유산을 정화하고 승화시키며 완성시키는 복음의 힘을 드러냈습니다. 복음은 세계와 인간을 그리스도교의 창조와 구원, 완성의 틀로 보는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예를 보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전통 문화에 뿌리를 둔 사상과 결합하여 신앙인들의 사회적 지향으로 융합되었습니다. ‘충’과 ‘효’라는 가치가 하느님을 향한 충성과 효심의 기틀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창조주’라는 개념이 없던 동양철학의 기반에서 그리스도교의 창조주와 구세주 개념 이해를 정립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효와 충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의 방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또한 한국 순교선열들은 선교사가 오기 이전부터 그 신앙을 받아들여, 당대의 주자학이 강요하던 남성중심주의 및 엄격한 신분제에 맞섰습니다. 이는 성경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나타난 사랑과 용서, 형제애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실현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만민평등사상과 보편적 인류애로 변화된 결과였습니다. 이 점은 매우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한국 교회의 천주교 도입이 혼합주의의 결과가 아님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이 과정은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문화적 전통을 고양하고 완성하는 힘을 보여줍니다. 이 점은 종교다원주의와 상대주의 뿐 아니라 선교 및 신학의 토착화 작업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3. 순교는 하느님 존재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한국 교회가 선교사가 입국하기도 전에 신앙을 받아들인 역사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하느님 존재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가 발전한 서구 문화의 옷을 입은 진리가 문화적 간격을 뛰어넘어 완연히 다른 문화, 종교적 환경에서 죽음을 불사하는 신앙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는 철학적이며 과학적인 인식의 과정을 초월하는 은총을 보여줍니다.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마음을 열어주시고 당신을 건네시는 신비를 드러냅니다. 이 점은 현대 신학자들이 과학 및 철학과 대화할 때 어느 지점에 서있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신학은 과학 및 세속 학문의 발견을 그리스도교적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신학은 우리의 지성과 앎을 넘어 자신을 건네주시고 알려주시는 하느님의 자기전달에 입각한 세상과의 대화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한국 교회사에 나타난 순교는 온전한 삶의 기록에 근거하여 이해될 때 그 성사적(sacremental) 신비를 보여줍니다. 순교는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는 최고의 진리이신 인격적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징이며 교회를 종말론적 공동체인 희망의 몸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참 의미가 그의 가르침과 삶에 대한 이해 위에 온전히 드러나듯이, 순교자들의 죽음도 그러합니다. 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실현한 삶의 증거와 말씀을 보지 않는 순교의 이해는 온전한 이해가 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의 사목이 이러한 순교 이해 위에 서는 경우, 그 뿌리는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 교회 역사상 가장 생생한 한국 교회 순교자들의 삶의 기록은 전 세계를 향한 하느님의 은총이며 선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반성

21세기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는 박해가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보다 더 강하다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을 박해로 규정한 베네딕토 교황님의 가르침처럼, 진리와 말씀 그리고 성령의 작용을 저해하는 모든 움직임이 박해입니다. 그리고 이를 거슬러 하느님의 존재와 활동을 증거하는 모든 활동이 순교입니다. 순교는 죽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이며 삶입니다.

이제, 죽기까지 실천으로 증거한 순교선열들의 삶의 모습에 오늘의 한국 교회를 비추어봅니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희생과 결단, 사회와 문화의 부정의를 비폭력적인 실천의 삶으로 드러내며 이를 善으로 변화시킨 그들의 증거가 우리 교회에 살아있는지를 반성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이, 한국 교회는 중산층의 교회에 안주하며, 성장과 권력의 추구하는 모습으로 대형화와 성과주의를 지향해왔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교회의 잘못을 반성합니다. 한국은 성장제일주의의 기세에 밀려 윤리의 가치가 설 곳을 잃었습니다. 소비주의, 무한경쟁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우리의 생활규범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세월호의 비극과 가정의 붕괴, 만연한 낙태 등이 한국 사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초기 교회공동체가 보여주었던 신앙의 증거가 생활로 실천되었다면 보지 않았을 현재의 모습입니다. 어두움을 드러내는 진리의 빛, 진리를 증거하는 삶으로 이끄는 성령의 작용, 문화와 사회를 복음화하는 말씀의 힘 등이 온전히 드러나지 못한 결과라고 교회의 지도자로서 깊이 반성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문제의 근원 중 일부가 잘못된 순교 이해에 있다고 말하려 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죽음만을 강조하는 순교가 있는 한, 교회는 순교라는 씨를 온전히 틔울 수 없습니다. 순교가 신앙인들의 희생요구를 합리화하는 코드가 되는 한, 교회는 사목의 활력을 잃게 됩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죽음과 순교를 긴밀히 연결시키는 이유는 시복ㆍ시성 추진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복을 위해 제출되는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들이 죽음을 앞둔 신앙고백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순교자의 죽음은 초자연적인 용기로 맞이한 영웅적인 장면의 기억으로서 박물관에 전시된 “화석”처럼 되었습니다. 순교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에서 ‘왜’와 ‘어떻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복시성을 위한 기록이라는 “렌즈”로 순교를 바라보면서, 최양업 신부처럼 모범적인 삶을 살다가 병사하거나 자연사한 신앙선조들의 모범적인 삶과 증거들의 가치가 잊혀지고 소실되는 우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회심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삶의 자리인 순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금, 질문으로 다가와 현재의 어두음을 밝히는 진리가 온전히 드러나야 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복음의 눈으로 읽어서 문화를 고양시키며 완성시키는 말씀의 힘이 활동해야 합니다. 철저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의 작용에 우리를 온전히 내어맡기며 살아갈 때, 다시 말해 오늘 이 자리에서 순교 성인들처럼 우리도 순교를 다짐할 때 가능합니다.

죽기까지 증언한 삶의 모습으로 이해되는 순교에서 죽음은 삶의 가치를 완성하는 마침표입니다. 우리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리와 사랑의 힘에 대한 그들의 증언이 오늘도 건강하고 풍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교회와 신앙인, 그리고 한국 사회가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순교의 신비가 우리를 통해 드러나도록 비워야 할 때입니다.

세상의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성공주의를 거슬러 우리에게 순교의 용기를 주시는 하느님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매일의 도전에서 우리는 여전히 순교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라는 그럴듯한 유혹을 분연히 거부하고, 하느님의 나라와 뜻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신앙에서 애덕을 실천함으로써 그 증언의 순수성을 입증한 것처럼, 우리도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탐욕과 경쟁, 살생이라는 악의 기운을 물리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힘을 드러내야 합니다.

교회는 예언자의 기능을 상실하고 중산층의 편안한 사랑방이 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봅니다. 교회가 가슴을 치며 반성합니다. 이에 순교자의 죽음이 아닌 삶을 조명하고, 순교 신학의 기틀을 바로잡아 그 열매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고자 합니다. 또한 순교 정신을 신자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실천적인 순교가 그 빛을 발하도록 교회가 노력하겠습니다.

희망을 향하여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이 ‘프란치스코 효과’로 불리는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교회는 서서히 큰 항공모함의 운전각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끄러운 모습들을 변화시켜, 무관심의 세계화가 만연한 현대에서 교회가 안전한 섬으로서 자리잡아가겠습니다.

특별히 ‘자비의 희년’인 2016년은 한국 교회 박해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 15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반성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온전한 모습으로 치유하시는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기도와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자비의 체험을 키워나가 우리 삶의 존재 전체와 활동 전체를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리겠습니다. 진리를 구하는 올곧은 마음, 고귀한 신앙에 대한 충실성, 애덕과 연대성으로 증언하는 삶, 이것이 현대의 순교임을 교회의 변화된 모습으로 입증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의 회심이 나눔과 섬김, 절제를 실천한 순교의 자리로 되돌아갈 때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적 선택과 공동선 창조 안에서 연대성을 맺는 지구 내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실현됩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윤리적 붕괴 및 환경파괴의 현실을 그리스도교 진리의 눈으로 성찰하고 올바른 선택을 통한 순교적 삶의 모습을 증거 하겠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가 민족의 분단과 대립을 넘어 화해로 나가며, 마침내 온전한 일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치적인 계산이 아닌 인류애와 형제애를 통해 상호간 신뢰를 회복하고 민족이 주체가 되어 원래의 하나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차분히 준비하겠습니다. 또한 아시아를 비롯해 선교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세계 교회 복음화의 전환점을 마련하겠습니다. 특히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의 자리에서 진정한 인류애를 실천할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선교와 신학 토착화의 고민을 진지하게 수행하겠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 신앙인들부터 온갖 유혹을 떨치고 양심과 원칙을 선택하고, 인권과 사회정의를 지켜가겠습니다. 동시에 생명과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며 미래 세대를 책임질 청소년들이 교회의 품안에서 성장하여 건강한 비전과 용기를 품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가 노력하겠습니다. 과학과 대화하고, 사회의 악과 대결하는 자리에 교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나갈 길을 고민하며 성실한 자세로 신학과 신앙의 양분을 공급하여 신앙인으로서의 증거와 실천을 돕는 자리에 서겠습니다.

아울러 초기 교회처럼, 공동체적 관계를 강화하여 현대 사회의 외로움을 신앙적 형제애로 치유하며, 자비와 인내와 완전한 사랑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나서서 변화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의 이러한 노력은 아시아 지역의 교회뿐 아니라 세계 교회의 변화와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리가 확신합니다. 세 번의 교황 방한과 최대 규모의 성인 및 복자 시성ㆍ시복식을 치러낸 한국 교회가 그런 외적 화려함에 안주하지 않고 이제 회심한 모습으로 순교의 은총에 온전히 답하며 그 몫을 감당하겠습니다. 마침내 그 노력이 열매를 맺는 날,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박해시대 순교자들이 신앙 때문에 감행했던 결단을 기억합니다. 사랑을 실천했던 그들의 모범을 따르고, 그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소망했던 아름다운 하느님의 나라가 오늘 여기에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스스로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순교의 정신을 되살리고 실천하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 과제를 온전히 수행하여, 복음의 빛이 한국과 아시아, 세계로 전파할 수 있도록 모든 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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